칼럼/인생2017. 2. 5. 01:49

오스트리아를 여행 할 때였다. 

촉박한 일정 탓에 비엔나에만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600년간 유럽을 호령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쉰부른 궁전". 

어느 이름 없는 귀족의 여름 별궁인  "벨베데레 궁전".

둘 중 하나를 선택 해야 했다.


큰 고민 없이 "벨베데레 궁전"을 선택했다. 

그곳에 불후의 명작,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은 생각 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한쪽 벽면에 오직 그 그림만 걸려 있었다.

금빛 찬란한 색상을 내기 위해 금 가루를 썼기 때문일까

그림은 기대 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비 오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는 것과,  비 오는 풍경을 직접 보는 정도의 차이 였다.

 

그 곳에서 흥미로운 모습도 발견 했다. 

관람객들의 행동이 모두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방에 들어선 후 그림 가까이 다가가 보다가 점점 뒤로 물러난 후 어느덧 한 지점에 모여 그림을 보고 있었다. 

나 역시 똑같은 과정을 거쳐 그 곳에 합류 했다. 

그렇다. 그곳은 그림이 가장 아름답게 보여지는 지점이였다.

 

명작이라도 너무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면 빛 바랜 물감과 거친 붓자국 뿐이다. 

명작을 명작 답게 , 작품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그 작품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 보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유화는 "저만치"라는 싯구가 있어 비로소 명시가 되었다.


작품과 나 , 대상과 나 사이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하는 지점. 

어떤 대상을 바라봄에 있어 가장 돋보이게 하는 적정한 거리.

이를 미적거리(美的距離  ,Aesthetic distance)라 한다.

미적거리(美的距離)는 비단 예술작품을 바라봄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일정한 거리가 필요 하고 제각각 가장 어울리는 균형잡힌 지점이 존재한다.

 

쇼펜하우어의 "소품과 단편집(Parerga und Paralipomena)"에 재미 있는 우화가 나온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려 했다.

하지만 몸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바람에 다시 흩어지기 시작했다. 

흩어지면 매서운 추위에 견딜 수 없어 다시 모여 든다. 

또다시 가시가 서로를 찔러 다시 흩어졌다. 

모이면 흩어져야 하고 , 흩어지면 다시 모여야 하고

고슴도치들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하지만 많은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상대방의 가시를 피할 수 있으면서 서로의 체온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장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인간관계에 있어 '적정한 거리를 두는 것'의 중요성을 잘 표현한 예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 dilemma)의 유래이기도 하다.

 

누구나 원하든 원치 않든 수 많은 사회적 유대관계 속에 살아 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상사와 부하의 관계, 친구관계, 연인관계 ,부부관계...

이렇듯  다양한 관계의 씨줄과 날줄이 복잡하게 뒤엉켜 오늘의 삶을 이루고 있다. 

 

이 모든 관계는 제각각 그 모양에 가장 어울리는 최적의 거리가 있다.

너무 멀어도 문제지만 무작정 가깝다고 모두  좋은 것도 아니다.

어떤 관계든 허물 없이 지내는 것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돈독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까우면 상사로서의 권위가 사라져 조직은 와해 되고 만다.

서로 사랑한다며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관여 하고 참견하려 들면 서로가 서로를 찔러 사랑으로 시작한 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된다.

 

작품에 매료 되어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더라도 한 발자욱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어야 작품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 할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도  멈춰야 하는 자리가 있고, 다가가기 싫더라도  먼저 손 내밀고 다가가야 하는 시점도 있다.

삶의 미학은 여러 관계의 특성에 맞게  일정한 거리두기를 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스 신화에 "이카루스의  날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야 하는 이카루스.

너무 낮게 날아 바다에 가까워 지면 바다의 파도에 녹아 추락하게 되고, 

너무 높이 날아 태양과 가까워 지면 태양의 열기에 녹아 추락하게 된다.

이카루스는 더 높이 오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태양을 쫓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날개가 녹아 바다로 추락했다.

자기가 머물 자리를 망각하고 높히, 더 높히  솟구 치고자 했던  이카루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황금비율이 있고, 미적거리가 있듯 그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도 최적거리가 있고 가장  보기 좋은 아름다운 위치가  있다.

절묘한 지점을 찾고 최적의 거리를 발견해야 한다.

우정을 지키려면,사랑을 간직하려면, 화목을 유지하려면  , 시너지를 이끌어 내려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 곳을 찾아 내고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 많은 관계속에 존재하는 내 삶이 한 편의 아름다운 명작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관계 설정이 최적화 되어야 함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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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