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인생2017. 2. 5. 01:24
일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나라다.
19세기 말 서구열강들이 제국주의 논리로 아시아를 유린할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본만이 자국의 힘으로 열강의 침략을 막아내고 강대국들과 어께를 나란히 했다.
물론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와 만행은 천인공로할 일이고 그 어떤 변명과 논리로도 정당화 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가 생각하는 일본과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이 다르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우스게 소리가 있을 정도로 한국사람들은 일본을 과소평가 하고 있고  일본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아마도 일본으로부터 수차례 침략을 받은 역사적 배경탓에 반일감정이 가슴속에 뿌리깊이 박혔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과 축구시합이라도 열리면 선수들은 죽기 살기로 뛰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른나라는 몰라도 일본만큼은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일 유전자를 물려 받은 필자 역시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어느해 겨울 고향친구와 일본 배낭여행을 떠났다.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으로 들어가는 길! 차창밖에 펼쳐진 풍경은 반듯하고 깔끔하고 아기자기했다.
소문처럼 물가는 높았고 어딜가나 친절했다. 친한 친구와 이국땅 구석구석을  둘러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뜻밖의 이벤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날은 마침 독일월드컵 진출을 결정지을 최종예선전이 있는 날이였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쿠웨이크, 북한과 일본이 같은 시간대에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축구 열기가 한국 못지않게 뜨거웠다.  
경기 시간이 다가오자 거리는 한산했고 삼삼오오 모여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도 보였다.
필자도  축구 경기를 볼 수 있는 어느 이름모를 호프집을 찾아갔다.
축제분위기를 연상하듯 시끌벅적 했고 발디딜 틈 없이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두 대의 스크린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쪽은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한국과 쿠웨이트 경기를, 다른 한쪽은 현지인을 위해 일본과 북한 경기를 틀어 놓았다.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자 응원열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옆 테이블에 있던 한국인 유학생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며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쳤다.
한국과 쿠웨이트 경기 못지않게 북한과 일본의 경기도 흥미로웠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했던가! 필자는 북한이 이기길 바랬다.
아니, 일본이 지길 바랬다고 말하는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 쿠웨이트와 경기 하더라도 일본이 지길 바랬을 것이다.
아마 그곳에 모인 한국사람, 아니 그 경기를 보는 한국사람이면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사람도 자신들의 라이벌 한국이 지길 바라고 있음이 분명할테니 말이다.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경기를 주도하던 한국이 드디어 첫 골을 넣었다. 
한국이 골을 넣자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일본사람들도 같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몇몇한 서로 얼싸 않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아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좋아하는 척 하고 있는 것이 아니였다.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일본사람들이 한국을 응원하다니.. 큰 충격이였다.
찰라의 순간이였지만 혼란스러웠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국인 유학생이 필자의 당황한 모습을 발견한 뒤 웃으면서 말을 건네왔다.
"일본 사람들은 진심으로 한국을 응원하고 있는 게 맞아요. 
일본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을 좋게 생각해요.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일본을 싫어한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요."
한국인과 일본인은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에 차이가 있었다.

근대사를 두고 보면 일본은 가해자고 한국은 피해자다.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쉽게 잊어버리지만 , 피해자는 오래도록 가슴에 응어리가 남아있기 마련이다.
베트남 전쟁때 베트콩이 어느순간부터 한국군을 피하고 미군하고만 싸우려 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많은 복선이 깔려있다.
한국군을 피하려 한 이유가 단지 한국군이 용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만의 시각일수도 있다. 피하고 싶을 정도로 용맹했을 수도 있지만  피하고 싶을 정도로 잔인했을 수도 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자유베트남을 도우려 미군과 함께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그곳에서 한국군은 매우 용감했다."
한국의 베트남 참전에 대한 한국인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19세기 온세계가 제국주의 경쟁을 벌이던 시대, 일본은 아시아 국가로 유일하게  영국,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국주의 반열에 뛰어 들었고 ,그 과정에 조선을 합명하게 되었으며 그로인해 조선의 근대화에 초석을 깔게 되었다."
일본인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36년동안 같은 나라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더욱이 일본은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반성하기보다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 하고 왜곡해서 가르치기 때문에  그 교육을 받은 일본인은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빛이 물속을 통과하면 굴절되고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개색을 띠며 분산되듯 , 동일한 사건, 동일한 상황을 두고도 각가 보유한 인식의 프리즘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보이게 된다.
성별에 따라, 세대에 따라, 종교에 따라, 성장배경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지고 해석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같이 자란 형제라도, 같은 일을 하는 동료라도, 같이 사는 부부조차도  모든 일에 인식을 같이 할 수 없다.
"우리는 생각이 같아, 너와 나는 같은 마음이야" 이런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조차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아무리 그 마음이 잘 통한들 인식이 같을 수가 없고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이 상대에게 충격적인 일일수도 있고,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 가슴팍에 비수처럼 꽂힐수도 있다.
서로 생각이 다를 때 자신도 모르게 내가 맞고 상대가 틀리다는 전제를 깔면 어지간 해서는 생각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다.
모든 것에 인식을 같이하고 , 모든 것을 공유해야만 마음이 맞다고 볼 수는 없다.
서로의 생각이 같기 보다 서로의 생각이 다름이 더 자연스울수도 있다.
서로 가치관이 다르고 , 생각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는 모습이 진정 마음이 잘 맞는 것이 아닐까.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 그 사람의 경험, 아픔,  성장배경,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 헤아려보는 노력이 중요하다. 
모든걸 공유하고 , 모든걸 나누고 , 모든 것에 인식을 같이 하는 것이 좋을듯 하지만 자칫 자신도 모르도 상대를 억압하고 힘들게 하고 지치게 만들지도 모른다.
모든것을 나누지 못해도,  모든걸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서로의 입장이 되어 보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고 사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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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