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인생2017. 2. 5. 01:25
풍경기억상실(landscape amnesia)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만년설로 덮혀 있던 산이 지구온난화로 눈이 조금씩 녹아내리다 어느순간  눈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산을 매일 보던 사람들은 눈이 모두 사라진걸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났다 30년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이 산 정상에 눈이 없어진 모습을 보고 깜작 놀라게 됩니다. <총.균.쇠>저자 '제레드다이아몬드'의 증언입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교훈입니다. 그만큼 매일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알아 차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저에겐 7살날 딸내미가 있는데 4살때부터 벽에다 키를 표시해 두었습니다.
어느날 많이 컸다 싶어 키를 재보았더니 한뼘 이상 컸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나 생각해 봤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모르는 사이 가히 천지개벽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의 고향은 경상도 시골입니다. 
경주에서 버스를 타고 건천읍내로 들어 가고, 읍내에서도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합니다.
저희 집은 그런 꼴짜기 마을에서도  제일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또래에 비해 문명의 혜택을 늦게 받은 편입니다.
중학교때로 기억합니다.
어느날 거리를 지나가는데 팝송이 들려 왔습니다.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였습니다.
최신곡인줄 알았는데 오래전 노래더군요.. 그순간 요즘 말로 완전 꽂혔습니다..
저는 지금도 비틀즈를 좋아 합니다..  비틀즈가 부른 거의 모든 곡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당시 그 노래가 너무 좋아 아무때나 듣고 싶었는데 문제는 저희집에 녹음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라면 하나에 국수를 넣어서  4남매가 나눠먹는 형편이라 어머니께 녹음기 사달라고는 차마  말은 못하겠고, 만만한 누나를 쫄라 옆집에서 녹음기를 며칠 빌려 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후 공태이프를 하나사서 라디오를 틀어 놓고 낚시를 하듯 좋아하는 노래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라디오 DJ가 예스터데이를 틀겠다고 하면 녹음버튼을 누르고 녹음테이프에 담아서 들었습니다.
빌린 녹음기는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녹음기를 확보한 동안만큼은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경주 시내에가면 원하는 곡을 녹음해 주는 곳이 있다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테이프 하나에 많으면 20 곡 정도 담을 수 있었는데 돈을 주면 오디오 가게에서 녹음해 주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곡만 담기에는 너무도 큰 거금이 들어가기에 반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 반은 누나가 좋아하는 노래 리스트를 적어서  맞춤형 녹음테입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그때 누나가 이런말을 하더군요..  "세상 참 많이 좋아졌네.." 
저 역시 완전 공감하며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언제부턴가 저희집에도  녹음기가 생겼습니다.  
세월이 좋아져서 왼쪽 플레이어는 노래 틀어 놓고, 오른쪽엔 공테이프를 넣고 녹음 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카세트테입 중에서 좋아하는 곡만 골라서 녹음해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군대 제대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미니카세트를 장만한 뒤로는 좋아하는 곡은 되돌리기 버튼을 눌러서 여러번 듣곤 했습니다.
당시 "부분반복"이라는 놀라운 기능을 가지고 있던 최고급 일본산 미니카세트를 자기고 있던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카세트테이프 세대는 공감가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제 손엔 어지간한 초딩들도 하나씩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영화도 보고, 신문도 보고, 책도보고, 전화도 하고,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노래도 듣고 ,  메모도 하고, 일정관리도 하고, tv도 보고, 지도도 보고, 길도 찾고, 시계도 되고, 녹음도 되고, 계산기도 있고.....
이 모든 기능을 갖춘 기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이 놀라운  녀석은  한집 건너 한대씩 있는 것이 아니라 초딩도  하나씩 들고 다닙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삐삐를 허리에 차고 다니던 20년전으로 돌아가  20년후에 이런 기계를 초딩도 하나씩 들고 다닌다고 얘기 하면 정신나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까요?
요즘은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유튜브를 뒤지면 다 나옵니다. 
제가 알만한 노래는 99% 이상은 다 나옵니다. 
한번 들어보고 그 노래가 마음에 들면 다운받는 앱을 실행시키면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
카테고리를 만들어 분류도 가능합니다.
길을 걸어가다 문득 듣고 싶은 곡이 있으면 유튜브 뒤져서 다운받으면 됩니다.
너무도 익숙하고 남들도 다 하나씩 들고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등하교길에 논길을 걸으며 공상을 즐기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생각한 것은 대충 이런 것이였습니다.
-만화영화가 재미 있는데 왜 하루종일 틀어주지 않고  삼일절, 광복절 같은 기념일날 오전에만 틀어줄까.
-자동차를 쌩고무로 만들면 교통사고가 나도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을텐데..
-공기중에 있는 원소를 조립해서 물건을 만들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언제가는  모든 사람이 무전기처럼 작은 전화기를 한대씩 들고 다니지 않을까.
어느순간 돌이켜 보니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했던 공상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공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다보면  모든것을 두고 "그런가보다~" 하게 됩니다.
힘들고 어렵고 뭘하든 뜻대로 안되는 일만 생각하느라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잊어 버릴때가 많습니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그 가치를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변을 둘러보며 당연시 여기는 것 중에 감격스러운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야말로 What A Wonderful World 입니다.
이렇듯 세상이 좋아졌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는 것이 미스테리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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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