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1.10 식견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 3
  2. 2017.03.12 통찰의 시작 사색
칼럼/인생2018. 1. 10. 09:25

식견(識見)이란 사물의 이치를 분간하는 능력을 말한다.

두루두루 많이 아는 지식.

현명하게 분별 하는 판단력.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자신만의 주장인 컨텐츠.

이 모든 걸 갖춘 사람을 두고 식견이 높다 한다.


식견을 갖추기 위한  밑바탕은 경험이다.

경험은 Low data 에 해당한다. 

쌓여있는 데이타가 많아야 그걸 바탕으로 데이타를 분류하고, 분석하여 지혜라 할 수 있는 양질의 정보를 추출해 낼 수 있다.


부족사회는 대부분 최연장가 부족장을 했다. 

경험이 많아서 가장 지혜롭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러했다. 문자가 없는 부족 사회에서는 아무리 총명한 젊은이라도 경험치가 두 세 배인 노인의 식견을 따라가지 못한다.

서울대 나온 이등병도 고졸 출신 병장 앞에 서면 어리버리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족 사회에서는 경험의 바운더리가 제한적이다. 

주 활동 무대는 우리동네, 기껏해야 때에 따라 협력하고 전쟁을 치러야 하는  몇몇 이웃동네  정도다.

사회의 규모가 작을 때는 내가 겪는 직접 경험과  부족 어른이 가르쳐주는 간접경험 만으로 충분했다..


인간 사회가 발전하면서 집단의 연결이 점점 많아졌다..

씨족과 씨족이 연결되어 큰 부락이 되고, 큰 부락들이 연결되어 국가가 되었다.

문자가 발명되고 책이 만들어지면서 간접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경험의 획득 근원이 직접 경험에서 간접적 경험으로 바뀌었다. 


21세기 인간 사회의 네트웍 단위는 지구 전체다..

온 세상이 연결된 오늘날에는 획득해야 할 경험의 범위는 극도록 넓어졌다.

지구 행성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Low data를 입력해야  그 데이타를 가공하고 분석하여 식견이 나온다.


내가 몸소 겪는 직접경험의 분량은 극히 미비하다.

직접 경험이 전무한 것도 문제지만 어쨌든 활자와 미디어를 통해 얻게 되는 간접경험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많고 크다. 

직접경험 만으로 살아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을수는 있으나 뭘 모르는 상태에서 꼰대로 살다 가게 된다..


간접경험이 단지 독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자가 말한 호학(好學) 정신. 지혜를 사랑하는 philosophia 정신.

다시말해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 


예전에는 도서관을 찾아가서 이책 저책을 뒤지고 백과사전을 찾아야 했다.

지금은 알고 싶으면 알게 되는 게 너무도 쉬운 세상이 되었다.

이 얼마나 감격하며 감탄할 일인가..


이것저것 읽고, 보고 듣으며  데이타를 집어 넣다 보면 어느덧 그 데이타가 서로 연결되어 정보의 형태로 리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를 다룬 댄브라운의 소설 "오리진"과 유발하리리의 "사피엔스", "호모데우스"가 서로 연결된다.

나아가 인공지능, 4차산업 이슈와 무관하지 않고, 제약 바이오주가 주식시장에서 훨훨 날아가는 이유와도 서로 일맥상통함을 알게 되면 희열을 느끼게 된다. 


식견이라고 할것 까지는 없지만 어렴풋이 나마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의 대략적인 윤곽이 보인다.

어쩌다 어른이 됐지만 어쨌든 어른이 됐으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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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3. 12. 21:12

" 우주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인간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아인슈타인 -


아인슈타인이 가장 놀라워한 우주의 신비는 인간의 지성(知性)이다. 

인간은 어느덧 세상이 어떻게 시작해 어떻게 끝나는지 우주의 시작과 끝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린아이까지 뭐든지 물어 보면 답을 말해 주는 요술램프를 하나씩 들고 다니고 있다.

이 모든 기적은 인간이 지성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적과도 같은 인류 문명의 토대는  철학위에 구축 되었다. 

철학적 사고에서 수학이 나왔고 수학적 논리에서 과학이 나왔으며 과학의 초석위에 현대문명이 세워졌다.

그렇다. 모든것은 철학에서 시작 되었다.


철학은 곧 사색(思索)이다. 많은 지식을 저장하고 있다고 지성인(知性人)이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사색할 수 있어야 지성인이다. 

사색은 곰곰히 생각하여 이치를 따지는 것이고 , 이치를 따진다는 것은 "마땅히 그러함"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치를 따져 "마땅히 그러함"에 이르면 비로소  이치를 깨우치게 된다.




이치를 깨우치는 그 곳에서 통찰(洞察)이 나온다. 

현상을 보고 이면에 숨어 있는 것까지 꿰뚫어 보는 통찰을 얻고자 한다면 이치를 따져 보는 사색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사색의 훈련이 되어야 이치를 빨리 깨닫고 어떤 현상이든 정확하게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가 생긴다.


"소크라테스와 식사할 기회를 준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과도 바꿀 수 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그가 한 때 불교에 심취했다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 스티브 잡스는 언제나 지혜를  갈구하는 인간이였기에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을 마음껏 발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치는 공식과 같아 이치를 깨우쳐 공식을 알게 되면 대입만 하면 많은 것이 해석 된다.


예를 들어보자. 세상이 움직이는 현상을 보며 그 이치를 따져보라.

그러면 어느시대나 그 시대의 이해관계에 의해 가치관이 결정됨을 알 수 있다.

요즘은 자녀를 많이 낳으면 애국자가 되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둘도 많으니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 시절은 근면.성실이 훌륭한 직장인의 표상이였고 저축은 미덕으로 칭찬 받았으며 소비는 낭비라 하여 지탄을 받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완전히 바뀌었다. 

근면.성실 하기만한  직장인은 무능함의 상징이 되었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갖춘 톡톡 튀는 직장인을 능력자라 칭한다.

인구는 그때보다 훨씬 많은대도 불구하고 자녀를 많이 낳을수록 애국자 소리 듣고 저축하기보다  소비 하기를 더 장려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그 시대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일치한다.


70~80년대 우리나라는 산업화가 한참 진쟁 중이였고 경제는 고도 성장기였다. 

도로, 항만, 공장 등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고 신생 기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라 돈의 수요가 많았다. 

돈이 많이 필요한 사회임으로 가계는 저축을 많이 해 은행에 돈을 많이 공급해줘야  기업은 싼 이자로 돈을 빌려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기업에서는 창의적인 인재보다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고 기계 부품처럼 자기 위치에서 성실히 일하는 직원이 필요했다. 

또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에 비해 학교, 병원등 사회 기반 시설이 채 준비가 되지 않아 인구증가 속도 조절이 필요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의해 돈 아껴쓰고, 저축 잘 하고, 근면.성실하고, 자식 하나 낳아 잘 키우는 국민이 칭송 받았다. 하지만 그  모습은  그 시대가 원했기 때문에 강요받은 모습이다.


바야흐로 세상이 바뀌었다. 

도시화, 산업화가 마무리 되었고 우리나라는 어느덧 선진국형 저성장 사회로 변모했다. 

세상은  기계식 대량 생산의 "규모의 경제"로 승부 거는 산업사회에서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승부 거는 "정보화 사회"로 바뀌었다. 

기업들은 이미 현금을 많이 쌓아 두고 있고, 사회 인프로도 거의 갖춰 졌고 도시화도 정점에 달했기에  예전처럼 돈의 수요가 없다.  저축을 장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선진국형 경제에서는 가계에서 소비를 많이 해줘야 경제가 돌아간다.  소비는 어느새 미덕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인구는 많지만 소비를 더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자녀를 더 많이  낳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은 소비 잘 하고, 독창력과 장의력을 겸비하고 , 자식을 셋 정도는 낳아줘야  훌륭한 국민이라 칭송 받는다. 하지만 이 모습은 지금 시대가 원하기 때문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요 받고 있는 모습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시대의 요구에 당신의  가치관은 강요 받게 될 것이다.


로마의 흥망성쇄도 "그 시대의 이해관계"로 해석된다. 

로마가 로마다울 때 로마 정신은 "관용"이였다. 로마에 정복당한 피정복민에게도 로마 시민권을 나눠줬으며 로마 시민권자는  똑같이 대우 해줬다.

피지배지 출신 후손들도 능력만 있으면 황제가 될 정도로 로마는 관대했다. 일제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 천황이 배출된 격으로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로마는 다양성을 인정해 줬고 원하는 종교는 뭐든 믿을 수 있는  다신교였다. 

로마가 관용을 배푼 덕에 세계는 로마의 깃발 아래로 모였다.  

정복 당하면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 시민이 되게 해달라고 제 발로 찾아 오는 경우도 많았다. 

로마가 작은 도시국가에서 대제국으로 성장 할 때 관용 만큼 좋은 무기는 없었다. 

철저히 관용 정책을 폈던 로마는 그 덕에 마침내 대제국이 되었다. 지중해는 물론이고 유럽대륙 대부분을 차지하여 더이상 정복할 땅이 없었다.


대제국이 된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는 다양한 민족으로 이뤄진 나라를 수월하게 통치하기 위해서는  다양성보다  통일된 이념이 필요 했다. 

그때 눈에 들어 온 것이 기독교였다. 유일신 사상의 기독교 가치는 다민족 다종교 제국을 통치하기에 안성맞춤이였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힘으로 대제국이 된  로마는 대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의 가치관을 강요 하고  다양성은 억압하는 나라가 되어갔다.

관용을 버리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을때부터 로마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비관용이 절정에 이를때 로마는 멸망했다.

시대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관이 바뀌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기본 이치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누군가 강요하든 시대가 요구하든 이해관계의 얽힘 속에서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것은 거부하라.

그건 존엄성의 문제다.  그대의 존엄성이 상처 받지 않으려면 시대의 흐름에 편승 하더라도 알고 해야 한다.

그 시작은  스스로 곰곰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져볼 줄 아는  사색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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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