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인생2010. 4. 14. 08:21
오랜만에 싸이월드를  보다 보니 예전에 썼던 수필이 몇개 있네요..
사실 수필이랄 것 까지는 안되는 허접한 글이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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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와 막걸리를 마셨다.

내가 막걸리 마시는 것을 어머니가 아시면 뭐라 말씀하실까..

어머니는 아직도 내가 술을 입에도 못대는 착한 아들로 알고 계신다.

막걸리 몇 잔 한다고 그리 나쁜 아들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유난히 좋아 하셨다.

어릴적 동생들과 막걸리 심부름을 하지 않으려 많이도 티격 태격 했다.

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언제나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지셨다.

어머니는 싫어하시고 누나는 짜증을 냈지만 난 막걸리 몇 잔에 기분좋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드시면 언제나 나와 장기를 두셨다.

술이 취하시면 나와 게임도 되지 않았지만 일부러 져드리면 아버지는 더 기분이 좋아 껄껄 웃으셨다.

아버지의 그런 표정이 너무 좋았다.

아버지가 지금도 살아 계시면 아버지와 막걸리 몇 잔 나누고 싶다.

무슨 말씀을 하실까.

아버지와 막걸리를 마시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데 아버지는 만날 수 없는 곳에 계시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나에게 해주신 말씀도 별로 없고, 나에게 혼내 실때도 무슨 말씀을 하시며 혼을 내셨는지 기억도 별로 없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이것만은 기억난다

이른 아침 잠결에 이불이 벚겨 지면 윗목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시다 이불을 덮어 주시던 모습.. 군대서 휴가 나오면 육군병장 시절 무용담을 들려주시던 모습..

그러나 이제는 그런 아버지를 볼 수 없다.

오랜만에 막걸리를 마시니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께 다 큰 아들이 지은 시 한 수 들려 드리고 싶다.

 

막걸리

아버지가 막걸리를 마시듯

나도 막걸리를 마셔본다

그 땐 알지 못했다

술에 취해 기분 좋아하시는 아버지 모습을

 

나도 이제 아버지만큼 어른이 되어

아버지가 마시던 막걸리를 마셔본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막걸리 한 잔에 한줌의 시름이 사라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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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