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견(識見)이란 사물의 이치를 분간하는 능력을 말한다.
두루두루 많이 아는 지식.
현명하게 분별 하는 판단력.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자신만의 주장인 컨텐츠.
이 모든 걸 갖춘 사람을 두고 식견이 높다 한다.
식견을 갖추기 위한 밑바탕은 경험이다.
경험은 Low data 에 해당한다.
쌓여있는 데이타가 많아야 그걸 바탕으로 데이타를 분류하고, 분석하여 지혜라 할 수 있는 양질의 정보를 추출해 낼 수 있다.
부족사회는 대부분 최연장가 부족장을 했다.
경험이 많아서 가장 지혜롭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러했다. 문자가 없는 부족 사회에서는 아무리 총명한 젊은이라도 경험치가 두 세 배인 노인의 식견을 따라가지 못한다.
서울대 나온 이등병도 고졸 출신 병장 앞에 서면 어리버리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족 사회에서는 경험의 바운더리가 제한적이다.
주 활동 무대는 우리동네, 기껏해야 때에 따라 협력하고 전쟁을 치러야 하는 몇몇 이웃동네 정도다.
사회의 규모가 작을 때는 내가 겪는 직접 경험과 부족 어른이 가르쳐주는 간접경험 만으로 충분했다..
인간 사회가 발전하면서 집단의 연결이 점점 많아졌다..
씨족과 씨족이 연결되어 큰 부락이 되고, 큰 부락들이 연결되어 국가가 되었다.
문자가 발명되고 책이 만들어지면서 간접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경험의 획득 근원이 직접 경험에서 간접적 경험으로 바뀌었다.
21세기 인간 사회의 네트웍 단위는 지구 전체다..
온 세상이 연결된 오늘날에는 획득해야 할 경험의 범위는 극도록 넓어졌다.
지구 행성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Low data를 입력해야 그 데이타를 가공하고 분석하여 식견이 나온다.
내가 몸소 겪는 직접경험의 분량은 극히 미비하다.
직접 경험이 전무한 것도 문제지만 어쨌든 활자와 미디어를 통해 얻게 되는 간접경험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많고 크다.
직접경험 만으로 살아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을수는 있으나 뭘 모르는 상태에서 꼰대로 살다 가게 된다..
간접경험이 단지 독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자가 말한 호학(好學) 정신. 지혜를 사랑하는 philosophia 정신.
다시말해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
예전에는 도서관을 찾아가서 이책 저책을 뒤지고 백과사전을 찾아야 했다.
지금은 알고 싶으면 알게 되는 게 너무도 쉬운 세상이 되었다.
이 얼마나 감격하며 감탄할 일인가..
이것저것 읽고, 보고 듣으며 데이타를 집어 넣다 보면 어느덧 그 데이타가 서로 연결되어 정보의 형태로 리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를 다룬 댄브라운의 소설 "오리진"과 유발하리리의 "사피엔스", "호모데우스"가 서로 연결된다.
나아가 인공지능, 4차산업 이슈와 무관하지 않고, 제약 바이오주가 주식시장에서 훨훨 날아가는 이유와도 서로 일맥상통함을 알게 되면 희열을 느끼게 된다.
식견이라고 할것 까지는 없지만 어렴풋이 나마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의 대략적인 윤곽이 보인다.
어쩌다 어른이 됐지만 어쨌든 어른이 됐으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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