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의 어떤 유명한 통계학자가 침례교 목사의 수가 증가하는 만큼 알콜 중독자의 수도 증가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목사가 증가하고 알콜 중독자도 증가 하는 "상관관계"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
번민이 있을 때 어떤 이는 종교로 위안을 받고, 어떤 이는 술로 위안을 받는다.
"종교와 술은 위안을 준다"는 사실과 "목사와 알콜 중독자의 수가 동시에 증가 한다"는 사실을 잘 엮으면
"이 세상이 점점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결론에 도달 할 수 있다.
꾀 그렇듯 해 보이지만 정확한 인과관계는 증명할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19세기 미국은 인구가 계속 증가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970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모종의 실험을 하였다.
4살 된 꼬마들에게 마시멜로를 하나 준다.
아이에게 당장 먹으면 하나로 끝나지만, 참았다가 15분 후에 먹으면 하나를 더 준다고 제안했다.
실험결과 아이의 반응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어떤 아이는 당장 먹어 치우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15분을 참았다가 보상을 받았다.
그후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관찰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만족을 지연하는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에 비해 SAT점수가 높게 나왔다.
그후 추적 조사를 통해 인내하지 못한 아이들은 비만, 약물중독,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를 가진 어른으로 살고 있는데 반해 인내력을 발휘한 아이들은 성공한 중년의 삶을 살고 있음을 확인 하게 되었다.
이를 근거로 만족을 지연 시키는 능력이 훌륭한 성취의 원인 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에도 소개된 내용으로 동기부여가, 자기계발 강사들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하지만 "만족을 지연할 수 있는 것"과 "성취도가 높은 것"의 상관관계를 근거로,
"만족을 지연 할 수 있었기에 성취 할 수 있었다"는 인과관계로 단정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사실 마시멜로 실험에 참여했던 어린아이는 대부분 스탠포드 부속 유치원 소속이였다.
부모의 상당수는 스탠포드 대학원생이였고 아이들 대부분은 중산층 이상의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만약 실험 대상이 저소득층 지역의 형제가 많은 가정의 아이들이였다면 실험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을지도 모른다.
형제가 많고 부유하지 않아 늘 먹을 것을 경쟁 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라면 15분후에 하나 더 먹을 수 있다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당장 하나를 확실히 보장 받는 것이 보다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또한 15분을 참으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준다는 것을 믿으려면 평소 가정 환경이 안정적이며 부모 자식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부모 자식간에 신뢰가 두터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보다 보다 더 좋은 양질의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을 확률이 높다.
아이의 만족 지연 능력보다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랄 수 있었던 환경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했을 수도 있다.
상관관계가 있다고 반드시 필연적인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유를 먹인 아이가 우유를 먹인 아이보다 지능, 건강 등 여러 면에서 좋은 이유가 반드시 모유의 성분 때문만은 아니다.
엄마의 호흡을 느끼며 받는 안점감 , 엄마 눈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뇌의 자극이 아이의 두뇌 발달과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살다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부모와 자식 ,사랑하는 연인, 친구와 동료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인연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삶의 옷감을 짜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며 주의 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은 몇 마디 말과 몇 번의 상황을 조립하여 판단하고 규정해 버리는 것이다.
몇 마디 말과 사건 몇 개를 연결하여 공식과도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말을 했었고, 저런 행동을 했으니 그는 그런 사람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맞을 때도 있지만 오해와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사건을 한 줄로 세워 나열을 하면 1차원이 된다.
이렇게도 연결 하고 저렇게도 연결 하여 생각 해보면 2차원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객관화 하여 위에서 밑을 내려다 보면 축이 하나 더 생겨 3차원이 된다.
현재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축을 하나 추가하면 4차원이 된다.
어떤 현상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을 바라 볼 때, 부동산 시장을 바라 볼 때, 경제현상, 정치현상, 사회 현상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사건만 연결하여 결론을 내리면 그 생각은 1차원이다...
호재, 악재, 이벤트를 보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판 전체를 보는 사람이 있다.
판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판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알려는 사람이 있다.
판을 움직이는 자만 생각하기 보다 판이 움직여 온 역사의 큰 그림을 보려는 사람도 있다.
"나는 몇 차원의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일까"
봄이 왔다. 화두로 삼고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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