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일곱살 딸에게 레고 블럭이 생겼다.
아빠가 딸의 수준에 맞는 블럭을 선물해 준 것이 아니라 , 아빠따라 등산대회에 참석했다 얼떨결에 받은 선물이다.
선물 꾸러미를 들고 집에 오는 내내 딸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포장을 뜯자 실망한 기색이 역역했다.
겉표지에 나와 있는 멋들어진 건물대신 블럭 뭉치 몇봉지와 설명서 한장만 달랑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울상 짓는 딸이 안스러워 몇시간에 걸쳐 블럭을 완성해 주었다.
그제서야 만족하는지 딸은 완성된 블럭을 가지고 놀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퇴근후 거실에 들어서자 블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블럭을 모두 분해 한 뒤 자기도 한 번 맞춰 보겠다며 낑낑거리고 있었다.
아빠가 도와주겠다고 하자 혼자서 할 수 있다며 고집을 부렸다.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장난기가 발동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내버려 두었다.
혼자서 이리저리 맞춰 보더니 뭐가 잘 안되는지 투덜거리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뒤 딸의 환호성이 들렸다.
잠시후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아빠를 찾아와 언릉 자기가 만든 작품을 보러 가자고 재촉했다.
그럴리가 없었다.
분명 일곱살 아이가 쉽게 조립할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였다.
아빠보다 빨리 블럭을 완성했을리 만무하다.
놀라움반 호기심반 딸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보러갔다.
딸의 작품을 본 순간 감탄과 함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설명서대로 조립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그럴듯한 모양으로 블럭을 배치시켜 놓았다.
의미 있는 모양은 아니였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좌우 대칭을 만들어 놓고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일곱살 꼬마가 무엇을 알겠는가!
대칭이 뭔지, 비례가 뭔지, 미학이 뭔지 알리 만무하다.
자기 눈에는 좌우 대칭을 이루며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블럭이 완전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저 본능적으로 조화롭게 대칭을 이룬 모습을 보고 행복해 한 것이다.
어린 아이도 자기 나름대로 완전함을 추구하고 그 속에서 행복함을 찾는다는 게 신기했다.
바하가 서양음악의 아버지라면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유명한 피타고라스는 서양음악의 창시자로 불린다.
피타고라스는 어느날 우연히 대장장이가 망치질 하는 소리를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망치 무게의 비례에 따라 소리가 달리 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응용해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을 만들었다고 한다.
음과 음 사이의 비례가 계음이고 , 계음의 조화가 음악이다.
똑같은 소리라도 소리의 집합이 조화로우면 화음을 이루며 음악이 되지만, 소리의 집합이 무질서 하면 불협화음으로 소음이 된다.
무질서한 소리인 소음을 들으면 피곤해지지만, 비례와 질서로 하모니를 이룬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그에 반응하여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클래식을 틀어주면 뱃속의 아이도 좋아하고 심지어 식물도 음악을 틀어주면 잘 자란다고 한다.
이렇듯 질서가 있고, 대칭을 이루며 , 조화를 갖춘 소리를 들으면 행복해 지는 것은 보다 완전한 것에 반응하는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보다 완전함에 반응할때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제기능을 발휘하는 것이고 제역할을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철창에 갇혀 먹이를 받아 먹는 사자보다 , 밀림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먹이를 쫓는 사자가 보다 사자답다.
꽃은 화려하게 피워야 완전하고, 숲은 우거져야 완전하다.
활짝핀 꽃을 보면 아름답다움을 느끼고 , 울창하게 우거진 숲을 보면 경건함을 느끼고, 포효하는 사자를 보면 멋있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완전함에 제각각 반응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자
사람이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런데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풍요로움으로 채워지면 행복이 충만할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여러 조건을 두루두루 갖춰야 행복할 것 같지만 흔히들 말하는 행복의 조건은 내 몸을 두른 장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진정한 행복은 밖에서 안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 내 안에서 샘솟는 것이다.
내 삶을 행복으로 채우려면 밖에서 안으로 채워 넣으려 하기보다, 스스로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행복함이 끊임없이 솟아나게 해야 한다.
아빠가 딸의 수준에 맞는 블럭을 선물해 준 것이 아니라 , 아빠따라 등산대회에 참석했다 얼떨결에 받은 선물이다.
선물 꾸러미를 들고 집에 오는 내내 딸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포장을 뜯자 실망한 기색이 역역했다.
겉표지에 나와 있는 멋들어진 건물대신 블럭 뭉치 몇봉지와 설명서 한장만 달랑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울상 짓는 딸이 안스러워 몇시간에 걸쳐 블럭을 완성해 주었다.
그제서야 만족하는지 딸은 완성된 블럭을 가지고 놀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퇴근후 거실에 들어서자 블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블럭을 모두 분해 한 뒤 자기도 한 번 맞춰 보겠다며 낑낑거리고 있었다.
아빠가 도와주겠다고 하자 혼자서 할 수 있다며 고집을 부렸다.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장난기가 발동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내버려 두었다.
혼자서 이리저리 맞춰 보더니 뭐가 잘 안되는지 투덜거리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뒤 딸의 환호성이 들렸다.
잠시후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아빠를 찾아와 언릉 자기가 만든 작품을 보러 가자고 재촉했다.
그럴리가 없었다.
분명 일곱살 아이가 쉽게 조립할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였다.
아빠보다 빨리 블럭을 완성했을리 만무하다.
놀라움반 호기심반 딸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보러갔다.
딸의 작품을 본 순간 감탄과 함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설명서대로 조립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그럴듯한 모양으로 블럭을 배치시켜 놓았다.
의미 있는 모양은 아니였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좌우 대칭을 만들어 놓고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일곱살 꼬마가 무엇을 알겠는가!
대칭이 뭔지, 비례가 뭔지, 미학이 뭔지 알리 만무하다.
자기 눈에는 좌우 대칭을 이루며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블럭이 완전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저 본능적으로 조화롭게 대칭을 이룬 모습을 보고 행복해 한 것이다.
어린 아이도 자기 나름대로 완전함을 추구하고 그 속에서 행복함을 찾는다는 게 신기했다.
바하가 서양음악의 아버지라면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유명한 피타고라스는 서양음악의 창시자로 불린다.
피타고라스는 어느날 우연히 대장장이가 망치질 하는 소리를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망치 무게의 비례에 따라 소리가 달리 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응용해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을 만들었다고 한다.
음과 음 사이의 비례가 계음이고 , 계음의 조화가 음악이다.
똑같은 소리라도 소리의 집합이 조화로우면 화음을 이루며 음악이 되지만, 소리의 집합이 무질서 하면 불협화음으로 소음이 된다.
무질서한 소리인 소음을 들으면 피곤해지지만, 비례와 질서로 하모니를 이룬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그에 반응하여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클래식을 틀어주면 뱃속의 아이도 좋아하고 심지어 식물도 음악을 틀어주면 잘 자란다고 한다.
이렇듯 질서가 있고, 대칭을 이루며 , 조화를 갖춘 소리를 들으면 행복해 지는 것은 보다 완전한 것에 반응하는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보다 완전함에 반응할때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제기능을 발휘하는 것이고 제역할을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철창에 갇혀 먹이를 받아 먹는 사자보다 , 밀림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먹이를 쫓는 사자가 보다 사자답다.
꽃은 화려하게 피워야 완전하고, 숲은 우거져야 완전하다.
활짝핀 꽃을 보면 아름답다움을 느끼고 , 울창하게 우거진 숲을 보면 경건함을 느끼고, 포효하는 사자를 보면 멋있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완전함에 제각각 반응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자
사람이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런데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풍요로움으로 채워지면 행복이 충만할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여러 조건을 두루두루 갖춰야 행복할 것 같지만 흔히들 말하는 행복의 조건은 내 몸을 두른 장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진정한 행복은 밖에서 안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 내 안에서 샘솟는 것이다.
내 삶을 행복으로 채우려면 밖에서 안으로 채워 넣으려 하기보다, 스스로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행복함이 끊임없이 솟아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삶 속에서 끊임없이 완전함을 추구하고 이에 반응해야 한다.
자신의 삶에 완전함을 추구하는 가운데 행복이 뭍어 나온다.
자연은 인간이 자신의 삶에 완전함을 추구할 때 행복함을 느끼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완전함은 모든 것을 잘하고, 모든 것을 갖추라는 의미는 아닐것이다.
호랑이는 호랑이 대로 완전하고 토끼는 토끼대로 완전하듯, 장미는 장미대로 완전하고 들풀은 들풀대로 완전하듯,
완전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타고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삶에 완전함을 추구하는 가운데 행복이 뭍어 나온다.
자연은 인간이 자신의 삶에 완전함을 추구할 때 행복함을 느끼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완전함은 모든 것을 잘하고, 모든 것을 갖추라는 의미는 아닐것이다.
호랑이는 호랑이 대로 완전하고 토끼는 토끼대로 완전하듯, 장미는 장미대로 완전하고 들풀은 들풀대로 완전하듯,
완전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타고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해보고, 가능한 한 뭐든지 이뤄보는 것이다.
내 안의 능력을 최대치로 이끌어 내고 마음껏 발산해 보는 것이다.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가보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모든것이 완전함에 다가 가는 것이고 완전함을 추구하고 이에 반응하는 것이 내 안에서 행복함이 마르지 않게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법이 아닐까
내 안의 능력을 최대치로 이끌어 내고 마음껏 발산해 보는 것이다.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가보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모든것이 완전함에 다가 가는 것이고 완전함을 추구하고 이에 반응하는 것이 내 안에서 행복함이 마르지 않게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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