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즈음 나는 화장실에서 새벽까지 공부를 해야 했으므로 안팎으로 피곤하기 짝이 없는 가을이었다.
기숙사는 밤 10시30분이면 완전히 소등을 했다.
나는 기숙사 사감의 순시가 시작되는 11시까지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다가 순시가 끝나면 일어나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장소인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서 밤 1시까지 공부를 계속했다.

때로는 꼬박 밤을 새우면서 새벽 3, 4시가 될 때까지 화장실을 지키곤 했는데, 그러다가 4시에 청소부가 들어오면 할수 없이 옆의 샤워실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샤워를 하면서 책을 들고 있을 수는 없었으므로 그때는 공부한 것을 머릿속에 하나씩 떠올리며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화장실에서 밤새 공부하는 것은 여름보다 겨울이 더 괴로웠다.
아무리 수세식 화장실이지만 히터가 후끈후끈 들어오면 불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 홍정욱의 7막 7장 中 -
Posted by 카이사르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