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세계2011. 2. 7. 22:42

20세기에 가장 드라마틱하게 성공한 나라를 꼽으라면 독일과 일본을 꼽을 수 있습니다.
독일과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자 강대국입니다.
두 나라 모두 2차대전이 끝난후 패전국가로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었지만 부존자원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맨파워 하나로 세계 중심국가로  또다시 우뚝선 저력은 대단하다고 생각 합니다.

공교롭게도 독일과 일본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이 근대화를 하면서 롤모델로 삼은 나라가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프랑스와 영국의  등쌀에 밀려 유럽의 2류국가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유럽에서 러시아와 함께 가장 늦게 공업화된 나라에 속할 것 입니다...
독일이 이렇게 뒤쳐졌던 이유는 역사를 좀더 거슬로 올라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유럽은 종교개혁이후  신교와 구교의 종교전쟁이 벌어지는데 그 전쟁터가 바로 독일땅 이였습니다.
구교와 신교를 각각 신봉하는 유럽의 제후들이  독일 땅에서  서로 뒤엉켜 30년동안 전쟁을 벌이느라 독일은 전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지는 제앙을 격으며 국토가 완전히 초토화 되었습니다.
전쟁후 독일은 300개의 제후국으로 쪼개졌습니다..
수 많은 전쟁을 경험하면서 독일 국민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제후들의 명령을 철저히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규칙문화 , 명령문화로 진화하여  독일인의 사고와 의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전통적으로 제후가  특정 지역을 다스리는 봉건사회였던 일본 사회와 매우 흡사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런 국민적 기질이 마르크스의 집단주의 사상 , 그리고 나치의 파쇼정권이 가능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역시 독일인은 유럽의 그 어느 나라보다  규칙, 원리원칙, 규율을 중요시 하는 문화가 뿌리깊히 박혀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녁7시 이후는 벽에 못을 못 박고, 진공청소기 사용을 못하고, 텔레비젼 소리를 크게 틀지 못하고, 샤워기 소리조차 자제해야 하고 점심시간에는 잔디깍는 기계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 입니다.
법으로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어기면  주변에서 신고가 들어갑니다.
일본 얘기를 한다고 하면서 독일이야기를 자젤구레하게 하는 이유는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일본이 근대화를 하면서 역할모델로 삼았던 나라가 독일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은 철저하게 문을 걸어 잠그며 쇄국으로 일관했습니다.   일본 역시 에도막부 이후 기본적으로는 쇄국정책 이였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를 개쳑하면서 시장개방과 함께 기독교를 전파했기 때문에 천황의 나라인 일본으로서는  예수를 신봉하고 인간평등을 강조하는 기독교는 받아드릴 수 없는 가치였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 상인만은 예외였습니다.  철저한 상인이였던 네덜란드인들의 관심은 돈이였지 신앙 전파가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에게 만큼은 제한적이나마 교류를 허용 했습니다.
이것은  서양의 소식을 전해듣는 창구였지 개방이라고 하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모든 눈과 귀를 막고 우물안 개구리였던 조선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였습니다.
고립된 섬이기 때문에 언제나 교류를 해야하는 섬나라 특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일본은 세계정세의 분위기 파악은  어느정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 제빠르게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일본이 쇄국으로 일관하다  서구문명의 쓴맛을 본 이후에 개방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때 행했던 현명한 선택은  "배우는 것" 이였습니다..
그들의 선조들이   당나라에 견당사를 보내고, 수나라에 견수사를 보내며 중국 문물을 배웠듯이  젊고 패기 넘치는 50여명의 엘리트 청년들로 구성된 이와쿠라 사절단을  2년동안  미국과 유럽에 보내서 철저히 배우게 합니다.
이때 일본이 주목한 나라가 바로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입니다..
당시 유럽의 2류국가였던 프로이센이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부국강병의 기치아래  유럽 중심국가로 급부상하는 모습을 보고 일본은 자신들의 역할모델로 삼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독일의 DNA가 상당부분 이식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독일과 일본이  짧은 순간에 급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규칙문화, 명령문화, 앨리트 관료들에 의한 스피드하고 강력한 러더십등이 있습니다.
물론 역사적 배경으로인해  명령을 잘 따르고, 규칙을 잘 지키고 근면하고 성실한 국민성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슴을 부인할 수  없을 것 입니다.

일본이 뒤늦게나마 잠에서 깨어나 세계 열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선각자들 때문 입니다.
우리나라도 선각자들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선각자들은 아웃사이더 였고  힘이 없었습니다. 
반면 일본의 선각자들은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응집력 또한 강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이후 막부체제를 정리하고 천황을 중심으로한 강력한 중앙정부체제를 구축하는데 그때부터  엘리트 관료중심체제가 굳어지게 됩니다..
 당시 도쿄대학 등 최고의 명문대학들도  학문의 전당이라기보다 최고의 관료를 배출하는 관료 양성소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국민을 개몽하고 ,가르치고 , 아무튼  엘리트 관료가 기획하고 계획하고  설계하고 강력하게 밀어부치는 문화.....
오늘날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관료주의는 뿌리가 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에는 뒷쳐진 자가 앞선자를 따라잡을 때 사용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큰 원동력이였습니다.
문제는  변화 해야할 때 변화 하지 않는 다는 것이겠죠...
일본은 1970년대까지  내무관료들을 목민관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고 하니 엘리트 관료들의 우월의식 특권의식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듯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도 목격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을 통해 배웠고 근대화를 시켰으니까요...
일본에게 배웠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게 국민 정서상 맞지 않지만   솔직할 때는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노가다 용어에서부터 사회 시스템 , 기업문화, 군대문화까지  영향을 안받은 곳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40년동안 철저히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공식적으로 일본어를 써야 했고 일본 역사를  배우며 일본 천황을 숭배해야 했고, 그들이 해주는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일제시대  최고의 지식인들은 일본에서 유학한 사람이고  일본에서 공부한 후  독립운동을 한게 아니라 대부분은   일본 식민지가 된 조국에서 사회 중요한 요직에 배치 되었습니다.
이런 식민지배 역사가 수백년 전이 아니라  바로 우리  할아버지 세대였습니다..
우리의 할아버지가 어릴때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일본이였습니다.. 
40년동안 찌들렸으니 뼛속까지 일본화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일본에 반항하거나 거부한 사람들은 잡혀서 죽거나 만주로 도망가거나 지하에 숨어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일제 치하때  우리나라에서 인간대우를 받으며 산 사람들은 일본인임을 강요 받았고 일본식 교육을 받았고 세뇌를 당했습니다..
그렇게  40년동안  일본물에 쩔어 지내다 독립 했는데  친일파를  몰아내기는 커녕 친일파가 그대로 대한민국을 접수해 버렸습니다..
아이러니 합니다..
일제시대  독립군 잡으며 순사하던 놈이  독립후 빨갱이 잡는다며 경찰질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해는 갑니다.. 국가 시스템이라는게 치안, 행정, 교육 이런 것인데  일제시대  국가 시스템을 움직이던  사람들을  전부 친일파로 족쳐버리면  글도 못 읽는 돌쇠가 면장하고  힘쎈 마당쇠가  완장차고 경찰서장하면 그것도  문제이긴 합니다..
 어쨌든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일제시대  조선 시스템을 움직이던 사람들이 그대로 대한민국 시스템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 후에  일제시대 일본육사 출신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면서 20년 가까이 철권통치를  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일본을 배웠고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의 흥망성쇄를 몸으로 체험한  박정희가 운전하는 대한민국은  일본을 철저히 밴치마킹하게 됩니다..  메이지 유신까지 흉내내며 유신을 선포한건 에러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민주주의를 희생한 댓가로 고도성장의 기틀을 잡는데는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철저히 일본에게  벤치마킹을 강요 받았고, 스스로 일본을 벤치마킹을 했습니다.
일제 식민지, 6.25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다른듯 다른듯 하면서도  큰 맥락에서는 일본이 걸어왔던 역사의 과정을 그야말로  데자뷰처럼 닮아가고 있습니다...
일본이 잘 나갈때의 모습만 닮아가면 좋은데  산 꼭대기까지 오르다  산 밑으로 미끌어지는 모습까지 닮아가는 듯 합니다..
사실 이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글이 길어진 관계로 다음글에서...

(다음글 ) 일본 데자뷰가 위험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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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