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에서 군사적으로 가장 약체로 평가 받는 나라는 송나라입니다.
송나라는 거란의 요나라에 패해 매년 금 20만냥과 비단 50만필 바쳐야 했고 , 탕쿠트족이 세운 서하에게도 패해 금 10만냥과 차 2만근을 보내며 평화를 구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훗날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게도 밀려 양쯔강 이남으로 쫓겨 난 뒤로는 매년 비단25만필, 금25만냥을 바쳐야 했습니다.
이렇게 북방민족에게 착취를 당한 송나라가 조공을 바치느라 피페한 생활을 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경제적으로 엄청난 번영을 누렸습니다.
당시 양자강 이남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쌀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 났습니다.
쌀의 잉여로 농사에 종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금과 요에 바칠 공물을 생산 하는 행위는 농사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매년 조공으로 바칠 수 십 만필의 비단을 짜내기 위해 엄청난 노동자와 수 많은 공장이 돌아가야 했습니다.
송나라 전성기 때 쑤저우(蘇州)에는 5명이 한 조를 이뤄 베틀을 돌리는 직기를 100대 이상 갖춘 공장이 100개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베틀을 돌리는 공장 노동자만 5만명 이상이였고 여기에 염색, 방적 등 다양한 업종이 추가 되면서 수 십만개의 일자리가 생겨났습니다.
아울러 송이 금에 준 공물이 다시 송의 다른 문물을 사기 위해 송에 공급되면서 또다시 수요를 일으키며 송나라의 경제 사이클이 원활히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도시들은 거리마다 점포로 넘쳐났고 교통운수, 상점, 다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금나라가 착취 할수록 송나라가 번영 했습니다.
가내 수공업으로 설렁설렁 해도 되던 시대와 공장 짓고 기계 만들고 대량 생산할 궁리를 하는 시대와는 발전의 차원이 질적으로 다릅니다.
금나라가 송나라를 쥐어 짤수록 송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쥐어 짜내며 기술을 발전 시켰습니다.
조공으로 바친 비단과 금이 송나라에 금나라로, 금나라에서 다시 송나라로 돌고 돌면서 경제시스템도 같이 돌아갔습니다.
금나라가 송나라의 노동력과 물품을 갈취해 갔다는 단편적인 현상만 두고 보면 송나라의 경제발전은 모순이고 역설이고 기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시스템적인 관점으로 보면 금나라의 압박이 유효 수효를 창출 했고 송나라 경제시스템을 작동시켜 조공을 받치고도 막대한 잉여를 남기는 효과를 가져 왔던 것입니다.
한국 경제가 IMF를 극복한 과정도 현상 그 자체만 보면 다 망해가던 나라가 기적 같이 회생한 불가사이한 일처럼 보이지만 시스템적 관점으로 보면 상식적인 차원에서 해석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IMF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금리를 20%가까이 올려야 했습니다.
기업의 과다차입이 원인이 되어 IMF를 맞이 했는데 금리를 20%까지 올리니 부실기업은 견뎌낼 제간이 없었고 알짜배기 중에 알짜배기 기업만 살아남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망할 기업은 망하고, 수술 할 기업은 수술 하고 , 궁합에 맞는 기업끼리 짝짓기를 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체질개선을 하게 되었습니다.
산업 전반적으로 교통 정리가 되고 기업 운영은 한층 투명해지고 살아 남은 기업은 경쟁업체가 사라진뒤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조조정이 끝나고 불확실성이 사라지자 알짜배기 기업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졌고 이를 계기로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IMF 극복 그 제체만 보면 기적처럼 보이지만 시스템적 시각으로 보면 다행스럽게 선순환 사이클이 한 번 돈 것입니다.
경제는 눈에 보이는 현상 그 자체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적 관점에서 통으로 바라볼 때 훨씬 많은 것을 해석 할 수 있고 보다 정확합니다.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간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스템에서 파생 되는 현상만 보고 왈가불가 하면 본질에서 벚어 나게 되고 헛다리 짚기 십상입니다.
축구 메니아가 아니면 대부분 월드컵이나 한일전 같이 큰 타이틀이 걸린 축구경기만 보게 됩니다.
1년에 한 두번 축구 경기를 보는 사람은 승패에만 관심이 있고 언제 골이 터지느냐만 봅니다.
축구 시스템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90분 내내 눈은 공만 졸졸 따라 다닙니다.
그러나 축구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은 양팀의 전술에 관심을 갖습니다.
4-4-2 시스템을 쓰는지 3-5-2 시스템을 쓰는지 양팀의 전술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봅니다.
축구 초보들은 스타플레이어의 현란한 개인기를 보고 즐거워 하지만 축구 메니아들은 감독이 짜놓은 전략과 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며 축구를 즐깁니다.
똑같은 경기를 보더라도 선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양팀의 전략과 시스템을 읽어 내는 사람이 하는 말이 보다 정확합니다.
차범근 해설이 명품인 이유도 선수 개개인의 움직임보다 일반인이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축구 시스템을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선수 각자의 개인기 보다 팀 전체의 시스템을 봐야 진짜입니다.
경제현상도 시스템으로 읽지 않으면 온통 모순투성이고 모든 것이 거짓과 음모요, 하는 짓마다 사기처럼 보입니다.
경제를 단편적인 현상만 바라보는 것은 축구선수가 공만 쳐다보는 격입니다.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금 값이 폭등하고, 유가가 어떻고 채권 금리가 어떻고..
이런 얘기는 경제 시스템이 굴러가면서 파생되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으나 일단은 시스템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흘러가는 큰 물줄기를 읽고 본류의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지류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가치는 다름아닌 "시스템을 굴리는 것" 입니다.
"무엇을 하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무슨 기능을 하느냐 " 입니다.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거품을 조장하든 전쟁을 획책하든 거짓말을 지어내든 종이돈을 마구 찍어내든 무조건 시스템이 돌아가면 장땡입니다.
2007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에 닌자론(NINJA Loan)이라는 상품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닌자는 일본 자객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수입도, 직업도, 재산도 없는 사람을 뜻하는 ‘No Income, No Job Asset’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수입도, 직업도, 재산도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집을 사게 했습니다.
이들의 신용은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자는 높았습니다.
마땅한 직업이 없는 일용직, 흑인, 이민자들에게 돈을 돌려 받겠다는 채권은 상식적으로 회수가 불확실한 위험한 채권입니다.
그런데 이를 잘게 쪼개어 증권화하고 최첨단 금융공학이란 미명아래 여러 단계를 거쳐 보험 장치를 추가 하면서 트리플 A의 초우량 금융상품으로 둔갑하게 됩니다.
안전하면서 이자까지 많이 주니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습니다.
워렌버핏이 핵폭탄이라고 비유한 미국산 파생상품은 온 세계로 팔려 갔습니다.
지구 반대편 노르웨이 어촌 마을에까지 팔려 갔습니다.
완벽한 거품입니다. 완벽한 사기입니다.
그러나 이 거품으로 세계 경제시스템을 돌렸습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고 있었는데 다들 대출해서 집을 산다기에 덩달아 집을 샀더니 집값이 올랐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집 값이 올라 있으니 돈을 벌었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집 값이 오른만큼 추가 대출을 합니다. 집 값이 더 오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차를 바꾸고 가구를 바꾸고 주말마다 놀러다니고 파티를 열었습니다.
세계 GDP의 25%를 차지하는 미국 사람들이 펑펑 써대고 소비를 하니 세계경제가 동시에 호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미국에는 제조업이 없습니다.
생필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고 독일.일본.한국에서 자동차, 전자제품 가전제품을 들여오고 유럽에서 고급 명품을 들여옵니다.
미국에서 거품이 양산될수록 중국 공장이 팽팽 돌아 갑니다.
미국 사람이 소비를 할수록 중국에 공장이 넘쳐나고 노동자의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중국 정부는 돈을 긁어 모으게 됩니다.
그런데 중국으로 달러가 밀려 들어가면 중국 돈의 가치가 올라가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중국은 다시 달러는 밖으로 퍼내야 했습니다.
중국이 그동안 미국 채권을 사모았던 이유입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인은 중국에 종이 쪼가리 채권을 주고 중국인이 땀흘려 만든 생필품을 받아 씁니다.
이자 달라면 종이돈 찍어 주면되고, 원금 달라해도 종이돈 찍어주면 되고, 생필품 모자라도 종이돈 찍어주면 됩니다.
미국인은 거품을 만들어 세계 경제엔진을 돌려 주는 댓가로 공짜로 물건을 갔다 씁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사기로 보이고 , 미국이 세계를 수탈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금나라가 송나라에 조공을 요구해서 송나라가 번영했듯이 미국이 만든 버블로 세계 경제가 번영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입니다.
미국이 버블의 크기를 조정 했으면 20년 30년 호황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고 모순이고 역설입니다.
경제 현상을 단편적으로 보면 사기입니다.
그러나 시스템적으로 보면 이것이 자본주의 본질이고 역사의 반복입니다.
자본주의는 원래 거품을 일으키고 사기를 쳐서 시스템을 돌리는 구조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경제시스템이 꺼지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이 없습니다.
경제 시스템이 돌아야 재화가 분배 되고 잉여를 양산하여 잘먹고 잘 살게 됩니다.
시스템이 돌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놀고, 농산물이 썩고, 공장에 기계가 놀고 급기야 자본주의 체제가 먹통이 됩니다.
경제 시스템에서 잉여라는 에너지를 양상하기 위해서는 거품은 필요악입니다.
자본주의 발전이 버블과 함께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부동산 버블로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오늘날 역시 결코 유별날 시대는 아닙니다.
역사를 펼쳐놓고 보면 버블의 옷만 바꿔 입었다 뿐이지 옛날에 한 짓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스템을 굴려서 현상 유지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잉여를 창출하고 번영을 위해서는 버블은 필수 요소 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경제위기는 때가 무르익어 올 것이 온 것일 뿐이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올 것이 왔을 뿐입니다.
경제를 시스템적 관점으로 보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해괴망칙하고 기이한 현상들도 하나도 특이할 게 없습니다.
대상과 범위와 차원이 달라졌을 뿐 옛날에 해먹던 패턴을 그대로 반복고 있습니다.
'칼럼 > 서민경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형태의 세계대전, 화폐전쟁 (1) | 2017.03.11 |
---|---|
버블과 광기를 먹고 자라는 자본주의 (0) | 2017.03.11 |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원을 찾아서 (0) | 2017.03.11 |
"부동산 버블"은 21세기 형 "튤립 버블"이다 (15) | 2012.07.19 |
세상은 크게 변하고 있다 (5) | 2012.07.17 |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덫에 걸린다 (9) | 2012.05.19 |
위기 속에서 기회는 자란다 (10) | 2012.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