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인생2017. 2. 5. 01:27
최근 서점가에 실용도서 바람이 한풀 꺾이고 인문학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인문학!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지구 상에 인간만 살고 있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밝혀진 것만 약 150만 종인데 심해, 정글 등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걸 고려하면 최소 1000만 종 이상은 살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현재 살고 있는 생명체 이야기이고, 그동안 지구를 거쳐간 멸종된 생명체까지 합치면 수 억 종은 될 것입니다. 지구에 살았던 생명체 중 99%가 멸종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쩌면 인간은 지구에 잠시 살다가는 생명체일 수도 있습니다. 인문학만 공부한다면 이 세상의 아주 일부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만 공부해서는 인간을 알 수 없습니다. 우주를 알고 자연을 알아야 비로소 자연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을 알려면 한국을 떠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기차를 타고 고향 갈 때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광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외국 나가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아파트로 도배한 서울이 얼마나 운치 없는지 외국을 나가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래봐야 열 나라도 채 되지 않지만 우리나라를 떠나서야 비로소 희미하게 나마 우리나라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간을 알기 위해서라도 인문학만 해서는 곤란합니다. 남자는 왜 열 여자 마다하지 않으려 하고, 여자는 왜 일단 튕구고 보는지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면 답이 없습니다. 종족을 존속하기 위해 수컷은 최대한 많은 유전자를 뿌려야 하고, 암컷은 1년에 한 번의 기회 밖에 없기 때문에 최대한 우수한 유전자를 감별해야 하는 사연을 인문학에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사회화 현상, 종교현상 역시 인문학적으로만 접근하면 이해의 범위가 좁아지게 됩니다. 

지구는 인간이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인간의 착각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지구에 나타난 것은 지구 전체 역사로 보면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총 개체의 무게로 따지면  개미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맞는 말이 됩니다. 60억 인구 전체의 무게와 지구에 분포되어 있는 개미 전체의 무게가 비슷하다고 합니다. 역사로 보면 개미가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를 지배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미는 미개하다 할지 모르지만 인간사회 못지 않게 복잡하고 체계적입니다. 개미도 인간처럼 농사를 짓기도 하고  다른 종의 개미들을 습격해 부모.형제 죽이고 알과 번데기를 데려와 키워서 노예로 부려먹기도 합니다. 
이렇게 노예가 된 개미들은 적의 둥지에서 애벌레에게 먹이를 먹이고 청소를 하는 등 잡일을 하는데 간혹 지배자 개미의 번데기를 살해해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사회 현상을 인간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착각인지도 모릅니다. 종교 현상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만  이건 다음기회에...제 경험으로는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지면 세상이 달라보입니다. 정말 세상이 달라보입니다. 하나의 영역을 접할때마다 처음 보는 세상을 보는 느낌,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는 기분입니다. 

" 태초부터 나는 존재했다 " 
" 나는 별에서 태어났다 " 
" 세상은 텅 비어있다 " 
" 텅비어 있지만 충만하다" 
" 삼라만상은 에너지 덩어리다 " 

이 말이 종교적 표현같기도 하고, 문학적 표현 같기도 하지만 전부 과학입니다. 슈퍼노바, 인프라톤, 양자장, 진공에너지, 중성미자 이런 단어에 익숙한 사람이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위에 나열한 문장 하나의 의미를 음미하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기회가 되면 하나씩 풀어볼 생각합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에 3분의 1만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지면 됩니다. 경제, 투자, 역사, 고전,소설, 수필.. 이런 책을 읽다 가끔  자연과학책을 보면 됩니다. 어려운 수학, 물리학 수식을 공부하지 않고도 가능합니다... 교양도서 ,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봐도 충분합니다. 세상은 인문학을 하라고 하지만, 인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자연과학을 아는 만큼  깨닫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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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1:26
<문명의 붕괴> , <달러>, <우주의 구조>, <리스크>, <화폐전쟁>, <부의기원>..
모두 책 제목이다. 
누군가 이 책들의 공통점을 한 눈에 알아 차렸다면 필자와 독서 취향이 비슷하거나 책을 정말 많이 보는 사람일게다.
사실 위에 나열한 책들의 주제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주제가  딱딱하고 매우 두껍다는 것이다. 
<우주의 구조> 같은 책은 정말 질릴 정도로 두껍고 내용도 어렵다.
곱씹어 읽어 보면 이 책만큼 재미 있고 흥미로운 책이 없지만 누구에게 추천 하기는 망설여진다. 
이 책이 재미있기까지 수 년이 걸렸고 진도도 지독하게 안나간다.
이런 책은 오랜기간을 두고 천천히 봐야 하는데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겁다.
출.퇴근 길 복잡한 지하철에서 들고 읽기에는 거추장스럽고  책장을 넘기는 게 옆사람에게 민폐가 된다.
어디 그뿐이랴. 때론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싶고 밑줄친 것을 다시 보고 싶을때가 있는데 책이 두꺼우면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줄 녀석이 생겼다.. 아이패드다.
아직 e-book시장이 종이책만큼 크지 않아 정말 보고 싶은 책은 아직 e-book으로 보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웬만한 책은 e-book으로 읽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생각된다.
어쩌면  종이책이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이패드는 쓰면 쓸수록 정말 대단한 물건임을 깨닫게 된다..
필자의 아이패드속에는 수 십권의 책이 카테고리별로 분류 되어 있어 언제라도 볼 수 있다.
밑줄친 곳도 한눈에 볼 수 있고 찾고 싶은 부분은 키워드로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정말 놀랍고도 감격스러울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아이패드를 잘 활용 할 때의 이야기다.
아이패드가 기가 막히게  멋진 물건이긴 하지만 가끔 무서운 괴물처럼 보일때가 있다.
내가 아이패드를  가지고 노는 건지, 아이패드가 나를 가지고 노는 건지 해깔릴 때가  종종 있다.
신문을 보다 , 책을 보다, 게임을 하다 , 인터넷 서핑을 하다, 음악을 듣다, 강좌를 보다, 팟케이스 듣다, 새로운 앱이 뭐가 나왔다 찾아보다...
이렇게 정신없이 아이패드에 휘둘리다 보면 문득 아이패드가 무서워질때가 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도구인건지~~

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수술도구가 되기도 하고 살인도구가 되기도 한다.
핵에너지가 인류의 삶에 편리함도 주지만 재앙도 준다.
양귀비가 마취제로도 쓰이지만 마약으로도 쓰인다.
도구란 원래 그런 것이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어느날 정신없이 아이패드를 가지고 놀다 마음의 눈으로 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다보았다.
문득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녀석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우선 사용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목적에 충실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최초 구매목적에 맞게 책 보기 , 신문 보기, 일정관리등 핵심 용도를 사용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장소별로 용도를 달리함으로 교통정리가 되었다.
출근길 지하철, 직장에서 점심식사후에는 e-book
퇴근길에는 경제신문 , 집 거실에서는 사용금지..
평일에는 다소 딱딱하지만  정해진 장소에서는  반드시 목적에 맞는 용도로만 사용하면  제값을 톡톡히 해낸다. 
주말에는  좀더 유연하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집사람과 노트북 사용이 겹칠때 아이패드를 활용하고  쉬고 싶은데  딸내미가  놀아 달라고 괴롭히면 조금 던져주면 혼자서 잘 논다. 
연주하고 싶은 기타 강좌도 듣고, 유튜브로 음악도 듣고, TV도 보고, EBS 다큐도 보고, 게임도 하고, 서핑도 하고... 사용시간만 적절히 조절하면 분명 요술램프다.
아직도 아이패드를 사용할때마다 긴장된다.  
조금만 정신줄을 놓으면 이녀석이 나를 가지고놀기 때문이다.
이 녀석을 완전히 제압할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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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1:25
풍경기억상실(landscape amnesia)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만년설로 덮혀 있던 산이 지구온난화로 눈이 조금씩 녹아내리다 어느순간  눈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산을 매일 보던 사람들은 눈이 모두 사라진걸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났다 30년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이 산 정상에 눈이 없어진 모습을 보고 깜작 놀라게 됩니다. <총.균.쇠>저자 '제레드다이아몬드'의 증언입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교훈입니다. 그만큼 매일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알아 차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저에겐 7살날 딸내미가 있는데 4살때부터 벽에다 키를 표시해 두었습니다.
어느날 많이 컸다 싶어 키를 재보았더니 한뼘 이상 컸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나 생각해 봤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모르는 사이 가히 천지개벽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의 고향은 경상도 시골입니다. 
경주에서 버스를 타고 건천읍내로 들어 가고, 읍내에서도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합니다.
저희 집은 그런 꼴짜기 마을에서도  제일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또래에 비해 문명의 혜택을 늦게 받은 편입니다.
중학교때로 기억합니다.
어느날 거리를 지나가는데 팝송이 들려 왔습니다.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였습니다.
최신곡인줄 알았는데 오래전 노래더군요.. 그순간 요즘 말로 완전 꽂혔습니다..
저는 지금도 비틀즈를 좋아 합니다..  비틀즈가 부른 거의 모든 곡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당시 그 노래가 너무 좋아 아무때나 듣고 싶었는데 문제는 저희집에 녹음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라면 하나에 국수를 넣어서  4남매가 나눠먹는 형편이라 어머니께 녹음기 사달라고는 차마  말은 못하겠고, 만만한 누나를 쫄라 옆집에서 녹음기를 며칠 빌려 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후 공태이프를 하나사서 라디오를 틀어 놓고 낚시를 하듯 좋아하는 노래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라디오 DJ가 예스터데이를 틀겠다고 하면 녹음버튼을 누르고 녹음테이프에 담아서 들었습니다.
빌린 녹음기는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녹음기를 확보한 동안만큼은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경주 시내에가면 원하는 곡을 녹음해 주는 곳이 있다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테이프 하나에 많으면 20 곡 정도 담을 수 있었는데 돈을 주면 오디오 가게에서 녹음해 주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곡만 담기에는 너무도 큰 거금이 들어가기에 반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 반은 누나가 좋아하는 노래 리스트를 적어서  맞춤형 녹음테입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그때 누나가 이런말을 하더군요..  "세상 참 많이 좋아졌네.." 
저 역시 완전 공감하며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언제부턴가 저희집에도  녹음기가 생겼습니다.  
세월이 좋아져서 왼쪽 플레이어는 노래 틀어 놓고, 오른쪽엔 공테이프를 넣고 녹음 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카세트테입 중에서 좋아하는 곡만 골라서 녹음해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군대 제대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미니카세트를 장만한 뒤로는 좋아하는 곡은 되돌리기 버튼을 눌러서 여러번 듣곤 했습니다.
당시 "부분반복"이라는 놀라운 기능을 가지고 있던 최고급 일본산 미니카세트를 자기고 있던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카세트테이프 세대는 공감가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제 손엔 어지간한 초딩들도 하나씩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영화도 보고, 신문도 보고, 책도보고, 전화도 하고,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노래도 듣고 ,  메모도 하고, 일정관리도 하고, tv도 보고, 지도도 보고, 길도 찾고, 시계도 되고, 녹음도 되고, 계산기도 있고.....
이 모든 기능을 갖춘 기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이 놀라운  녀석은  한집 건너 한대씩 있는 것이 아니라 초딩도  하나씩 들고 다닙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삐삐를 허리에 차고 다니던 20년전으로 돌아가  20년후에 이런 기계를 초딩도 하나씩 들고 다닌다고 얘기 하면 정신나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까요?
요즘은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유튜브를 뒤지면 다 나옵니다. 
제가 알만한 노래는 99% 이상은 다 나옵니다. 
한번 들어보고 그 노래가 마음에 들면 다운받는 앱을 실행시키면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
카테고리를 만들어 분류도 가능합니다.
길을 걸어가다 문득 듣고 싶은 곡이 있으면 유튜브 뒤져서 다운받으면 됩니다.
너무도 익숙하고 남들도 다 하나씩 들고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등하교길에 논길을 걸으며 공상을 즐기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생각한 것은 대충 이런 것이였습니다.
-만화영화가 재미 있는데 왜 하루종일 틀어주지 않고  삼일절, 광복절 같은 기념일날 오전에만 틀어줄까.
-자동차를 쌩고무로 만들면 교통사고가 나도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을텐데..
-공기중에 있는 원소를 조립해서 물건을 만들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언제가는  모든 사람이 무전기처럼 작은 전화기를 한대씩 들고 다니지 않을까.
어느순간 돌이켜 보니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했던 공상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공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다보면  모든것을 두고 "그런가보다~" 하게 됩니다.
힘들고 어렵고 뭘하든 뜻대로 안되는 일만 생각하느라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잊어 버릴때가 많습니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그 가치를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변을 둘러보며 당연시 여기는 것 중에 감격스러운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야말로 What A Wonderful World 입니다.
이렇듯 세상이 좋아졌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는 것이 미스테리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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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1:24
일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나라다.
19세기 말 서구열강들이 제국주의 논리로 아시아를 유린할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본만이 자국의 힘으로 열강의 침략을 막아내고 강대국들과 어께를 나란히 했다.
물론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와 만행은 천인공로할 일이고 그 어떤 변명과 논리로도 정당화 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가 생각하는 일본과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이 다르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우스게 소리가 있을 정도로 한국사람들은 일본을 과소평가 하고 있고  일본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아마도 일본으로부터 수차례 침략을 받은 역사적 배경탓에 반일감정이 가슴속에 뿌리깊이 박혔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과 축구시합이라도 열리면 선수들은 죽기 살기로 뛰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른나라는 몰라도 일본만큼은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일 유전자를 물려 받은 필자 역시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어느해 겨울 고향친구와 일본 배낭여행을 떠났다.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으로 들어가는 길! 차창밖에 펼쳐진 풍경은 반듯하고 깔끔하고 아기자기했다.
소문처럼 물가는 높았고 어딜가나 친절했다. 친한 친구와 이국땅 구석구석을  둘러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뜻밖의 이벤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날은 마침 독일월드컵 진출을 결정지을 최종예선전이 있는 날이였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쿠웨이크, 북한과 일본이 같은 시간대에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축구 열기가 한국 못지않게 뜨거웠다.  
경기 시간이 다가오자 거리는 한산했고 삼삼오오 모여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도 보였다.
필자도  축구 경기를 볼 수 있는 어느 이름모를 호프집을 찾아갔다.
축제분위기를 연상하듯 시끌벅적 했고 발디딜 틈 없이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두 대의 스크린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쪽은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한국과 쿠웨이트 경기를, 다른 한쪽은 현지인을 위해 일본과 북한 경기를 틀어 놓았다.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자 응원열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옆 테이블에 있던 한국인 유학생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며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쳤다.
한국과 쿠웨이트 경기 못지않게 북한과 일본의 경기도 흥미로웠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했던가! 필자는 북한이 이기길 바랬다.
아니, 일본이 지길 바랬다고 말하는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 쿠웨이트와 경기 하더라도 일본이 지길 바랬을 것이다.
아마 그곳에 모인 한국사람, 아니 그 경기를 보는 한국사람이면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사람도 자신들의 라이벌 한국이 지길 바라고 있음이 분명할테니 말이다.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경기를 주도하던 한국이 드디어 첫 골을 넣었다. 
한국이 골을 넣자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일본사람들도 같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몇몇한 서로 얼싸 않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아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좋아하는 척 하고 있는 것이 아니였다.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일본사람들이 한국을 응원하다니.. 큰 충격이였다.
찰라의 순간이였지만 혼란스러웠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국인 유학생이 필자의 당황한 모습을 발견한 뒤 웃으면서 말을 건네왔다.
"일본 사람들은 진심으로 한국을 응원하고 있는 게 맞아요. 
일본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을 좋게 생각해요.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일본을 싫어한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요."
한국인과 일본인은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에 차이가 있었다.

근대사를 두고 보면 일본은 가해자고 한국은 피해자다.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쉽게 잊어버리지만 , 피해자는 오래도록 가슴에 응어리가 남아있기 마련이다.
베트남 전쟁때 베트콩이 어느순간부터 한국군을 피하고 미군하고만 싸우려 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많은 복선이 깔려있다.
한국군을 피하려 한 이유가 단지 한국군이 용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만의 시각일수도 있다. 피하고 싶을 정도로 용맹했을 수도 있지만  피하고 싶을 정도로 잔인했을 수도 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자유베트남을 도우려 미군과 함께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그곳에서 한국군은 매우 용감했다."
한국의 베트남 참전에 대한 한국인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19세기 온세계가 제국주의 경쟁을 벌이던 시대, 일본은 아시아 국가로 유일하게  영국,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국주의 반열에 뛰어 들었고 ,그 과정에 조선을 합명하게 되었으며 그로인해 조선의 근대화에 초석을 깔게 되었다."
일본인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36년동안 같은 나라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더욱이 일본은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반성하기보다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 하고 왜곡해서 가르치기 때문에  그 교육을 받은 일본인은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빛이 물속을 통과하면 굴절되고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개색을 띠며 분산되듯 , 동일한 사건, 동일한 상황을 두고도 각가 보유한 인식의 프리즘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보이게 된다.
성별에 따라, 세대에 따라, 종교에 따라, 성장배경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지고 해석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같이 자란 형제라도, 같은 일을 하는 동료라도, 같이 사는 부부조차도  모든 일에 인식을 같이 할 수 없다.
"우리는 생각이 같아, 너와 나는 같은 마음이야" 이런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조차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아무리 그 마음이 잘 통한들 인식이 같을 수가 없고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이 상대에게 충격적인 일일수도 있고,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 가슴팍에 비수처럼 꽂힐수도 있다.
서로 생각이 다를 때 자신도 모르게 내가 맞고 상대가 틀리다는 전제를 깔면 어지간 해서는 생각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다.
모든 것에 인식을 같이하고 , 모든 것을 공유해야만 마음이 맞다고 볼 수는 없다.
서로의 생각이 같기 보다 서로의 생각이 다름이 더 자연스울수도 있다.
서로 가치관이 다르고 , 생각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는 모습이 진정 마음이 잘 맞는 것이 아닐까.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 그 사람의 경험, 아픔,  성장배경,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 헤아려보는 노력이 중요하다. 
모든걸 공유하고 , 모든걸 나누고 , 모든 것에 인식을 같이 하는 것이 좋을듯 하지만 자칫 자신도 모르도 상대를 억압하고 힘들게 하고 지치게 만들지도 모른다.
모든것을 나누지 못해도,  모든걸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서로의 입장이 되어 보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고 사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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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1:23
어느날 일곱살 딸에게 레고 블럭이 생겼다.
아빠가 딸의 수준에 맞는 블럭을 선물해 준 것이 아니라 , 아빠따라 등산대회에 참석했다 얼떨결에 받은 선물이다.
선물 꾸러미를 들고 집에 오는 내내 딸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포장을 뜯자 실망한 기색이 역역했다.
겉표지에 나와 있는 멋들어진 건물대신 블럭 뭉치 몇봉지와 설명서 한장만 달랑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울상 짓는 딸이 안스러워 몇시간에 걸쳐 블럭을 완성해 주었다.
그제서야 만족하는지 딸은 완성된 블럭을 가지고 놀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퇴근후 거실에 들어서자 블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블럭을 모두 분해 한 뒤 자기도 한 번 맞춰 보겠다며  낑낑거리고 있었다.
아빠가 도와주겠다고 하자 혼자서 할 수 있다며  고집을 부렸다.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장난기가 발동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내버려 두었다.
혼자서 이리저리 맞춰 보더니 뭐가 잘 안되는지 투덜거리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뒤 딸의 환호성이 들렸다. 
잠시후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아빠를 찾아와 언릉 자기가 만든 작품을 보러 가자고 재촉했다.
그럴리가 없었다.  
분명 일곱살 아이가 쉽게 조립할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였다. 
아빠보다 빨리 블럭을 완성했을리 만무하다.
놀라움반 호기심반 딸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보러갔다.
딸의 작품을 본 순간 감탄과 함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설명서대로 조립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그럴듯한 모양으로 블럭을 배치시켜 놓았다.
의미 있는 모양은 아니였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좌우 대칭을 만들어 놓고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일곱살 꼬마가 무엇을 알겠는가!
대칭이 뭔지, 비례가 뭔지, 미학이 뭔지 알리 만무하다.
자기 눈에는 좌우 대칭을 이루며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블럭이 완전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저 본능적으로 조화롭게 대칭을 이룬 모습을 보고 행복해 한 것이다.
어린 아이도 자기 나름대로 완전함을 추구하고 그 속에서 행복함을 찾는다는 게 신기했다.
 
바하가 서양음악의 아버지라면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유명한 피타고라스는 서양음악의 창시자로 불린다.
피타고라스는 어느날 우연히 대장장이가 망치질 하는 소리를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망치 무게의 비례에 따라 소리가 달리 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응용해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을 만들었다고 한다.
음과 음 사이의 비례가 계음이고 , 계음의 조화가 음악이다.
똑같은 소리라도 소리의 집합이 조화로우면 화음을 이루며 음악이 되지만, 소리의 집합이 무질서 하면 불협화음으로 소음이 된다.
무질서한 소리인 소음을 들으면 피곤해지지만, 비례와 질서로 하모니를 이룬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그에 반응하여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클래식을 틀어주면 뱃속의 아이도 좋아하고 심지어 식물도 음악을 틀어주면 잘 자란다고 한다.
이렇듯 질서가 있고, 대칭을 이루며 , 조화를 갖춘 소리를 들으면 행복해 지는 것은 보다 완전한 것에 반응하는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보다 완전함에 반응할때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제기능을 발휘하는 것이고 제역할을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철창에 갇혀 먹이를 받아 먹는 사자보다 , 밀림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먹이를 쫓는 사자가 보다 사자답다.
꽃은 화려하게 피워야 완전하고, 숲은 우거져야 완전하다.
활짝핀 꽃을 보면 아름답다움을 느끼고 , 울창하게 우거진 숲을 보면 경건함을 느끼고, 포효하는 사자를 보면 멋있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완전함에 제각각 반응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자 
사람이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런데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풍요로움으로 채워지면 행복이 충만할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여러 조건을 두루두루 갖춰야 행복할 것 같지만 흔히들 말하는 행복의 조건은 내 몸을 두른 장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진정한 행복은 밖에서 안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 내 안에서 샘솟는 것이다.
내 삶을 행복으로 채우려면 밖에서 안으로 채워 넣으려 하기보다, 스스로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행복함이 끊임없이 솟아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삶 속에서 끊임없이 완전함을 추구하고 이에 반응해야 한다.
자신의 삶에 완전함을 추구하는 가운데 행복이 뭍어 나온다.
자연은 인간이 자신의 삶에 완전함을 추구할 때 행복함을 느끼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완전함은  모든 것을 잘하고, 모든 것을 갖추라는 의미는 아닐것이다.
호랑이는 호랑이 대로 완전하고  토끼는 토끼대로 완전하듯, 장미는 장미대로 완전하고  들풀은 들풀대로  완전하듯, 
완전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타고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해보고, 가능한 한 뭐든지 이뤄보는 것이다.
내 안의 능력을 최대치로 이끌어 내고  마음껏 발산해 보는 것이다.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가보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모든것이 완전함에 다가 가는 것이고  완전함을 추구하고 이에 반응하는 것이 내 안에서 행복함이 마르지 않게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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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1:13



어느날 책꽃이를 둘러보다 낯익은 책을 발견하고 오랜 추억이 떠올랐다.
그 책은 미래학자 앨핀토플러의 명저 <권력이동>이다.
<권력이동>은 <미래쇼크>, <제3의 물결>에 이은 그의 역작으로 90년대초반 지식인이라면  한권씩 끼고 다니던 책이다.
필자는 이 책을 군대에서 처음 봤다. 
군대서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  말 그대로 이 책을  읽는 사람을 처음 봤다.
당시 필자의 소대장은 명문대 ROTC 출신으로 틈만나면 책을 읽었다.
어느날 우연히 소대장이 너무도 진지하게 책을 읽는 광경을 목격했다.
필자는 말년 병장이라 소대장과 나이가 비슷했고 평소 형.동생처럼 지내고 있었다.
붉은색 표지에 커다랗게 <권력이동>이라는  검은색 활자가  박힌 두꺼운 책이였다.
한 눈에 봐도 재미 없어 보이는데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있는 게 인상적이였다.
호기심에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넌지시 물어 보았다.
그러자 알수없는 미소를 지으며 제대하면 꼭 돈 주고 사서 보라고 했다. 
뜬금없는 동문서답이였지만 그 말의 의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후 한동안 잊고 있었다. 
얼마후 필자는 군대를 제대했고  복학후 정신 없이 놀다보니 학교까지 졸업하게 되었다.
그런데   IMF 가 터져 버렸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나니 청년 백수가 되어 있었다.
할 일 없이 여기저기 배회하다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 
한쪽 구석에 붉은색 표지에 검은색 굵은 활자가 눈에 띄었다.
<권력이동>이였다.  몇해전 소대장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재미없어 보이고 백수에겐 너무도 비싼 책이였지만 소대장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책을 읽으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모든 내용이 이해가지는 않았지만  놀라웠다.
<농업혁명>에서 <산업혁명>으로 .. 그리고  이제 <정보혁명>이 온다고 했다.
힘을 가진자에서 돈을 가진자로 권력이 이동했다가 이제는 정보와 지식을 가진자에게로 권력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작은 희망을 봤다.  정보화시대, 정보혁명이 막 시작되는 시점이니 돈도  빽도 없고, 이름만 들어도 알아주는 명문대 출신도 아니지만 지금 출발해도 할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장 정보의 위력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한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당시는  초고속 인터넷이 안깔리고 전화선을 쓰는 모뎀시절이라  <PC통신>이 발달했다.
PC통신에 접속해  정보가 될 만한 것을 모아 봤다.
창업아이디어 , 대학생이 할만한 아르바이트 , 앞으로 뜨게될 직업, 면접 보는 요령...
여기저기서 긁어 모은 정보를 문서로 정리한뒤 곧바로 복사집에 달려가서 20권가량 제본을 만들었다.
PC통신에  아이디어 사업정보라는 이름을 내걸고 5000원! 한정판매한다고 소개했다.
설마 했는데 놀랍게도 연락이 오고 통장에 돈까지 입금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덜컹 겁이 났다.  불법이기도 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5000원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서 판매를 중지했다.
하지만 정보의 위력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서게 되었고 작은 소망이 생겨났다.
나만의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좋은 글과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 두뇌의 사용에 바탕을 둔 유식계급인 코그니타리아트( Cognitariat)에게 유리한 세상이 온다는 말이 뇌리에 깊이 박혔다.
아무튼 그 일을 계기로 해서 필자는 전공과 다르게 IT 세계로 입문하게 되었고 정보화시대 혜택을 적지 않게 받았다. 그로부터 십 수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그때 소망했던 것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이렇게 <성공가이드>에 칼럼을 쓰고 ,  컨텐츠를 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묘한 생각이 든다.
우연히 엮인 작은 인연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사람과의 인연도 중요하지만 책과의 인연도 소중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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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1:06



"통치자의 지력을 알고 싶다면 먼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질을 보면 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말입니다.
 
마키아벨리!
정말 대단한 사람이죠..
신의 이름으로 인간이 숨죽여 지내던 암흑의 중세시대...
권력을 획득한 자가 신의 이름 뒤에 숨어 인간을 부려먹는 비겁한 시대였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면죄부도 팔아 먹고, 신의 이름으로 전쟁놀이도 하고 , 신의 이름으로 인간위에 굴림하면서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신의 가면을 벚어던졌습니다..
인간 그 자체를 봤습니다. 
그는 요즘말로 하면 정말 쿨한 사람입니다.
 
" 인간들이란 충분히 만족시켜 주거나 짓뭉개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작은 피해는 복수하려 들어도 큰 피해는 복수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
이런 표현은 좀 과격하긴 하지만  군중의 속성에 대해 굉장히 솔직하게 말한 것입니다.
인간을 읽으려면 한비자를 보라는 말이 있는데 서양의 한비자로 통하는 마키아벨리의 조언 역시 인간을 이해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시 마키아벨리의 말을 볼까요...
통치자의 지력을 알려면 주변 사람들의 질을 보라...
"사람의 질"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뭐든 모양은 보기 쉽지만 질은 보기 어렵습니다.
상품의 모양은 눈만 있으면 보지만 , 품질을 알려면 그 상품에 대해 뭘 알아야 합니다..
써 보기도 하고, 만져 보기도 하고, 뜯어 보기도 하고.. 하다 못해 소문이라도 들어야 압니다..
물체의 모양은 눈만 있으면 보지만 ,  물체의 성질을 알려면 그 물체에 대해 진짜 뭘 알아야 합니다.
대장장이만 해도 쇠의 성질을  두루두루 알아야 두들기고 담금질을 해서 도끼도 만들고 칼도 만들고 솥도 만들 수 있습니다.
나무마다의 성질을 알아야 대들보로 쓸지, 장농을 만들지, 장작불로 쓸지 판단하고 적재적소에 갖다 쓸 수 있습니다.
"사람의 질"을 알려면 이것저것  많이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많은 사람과 부대껴 봐야 하고,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도 많이 봐야 합니다.
그렇게 입체적이고 총체적인 지력이 있어야 "사람의 질"을 판별하는 통찰이 생겨납니다.
척 보면 모를지언정 질이 좋고 ,  질이 나쁜 사람인지는 가려낼 수 있습니다.
 
질 나쁜 사람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대한민국 인재를 싹쓸이 해간다는 삼성이 선호하는 인물은 명문대 출신에 스팩 관리 잘한 뺀질 뺀질한 엘리트들이 아닙니다..
삼성엔 의외로 지방대 출신이 많습니다..
저의 사촌동생이 몇해전 삼성에 입사했습니다.
공부는 제법 잘했지만  그렇다고 출중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방대 출신에 고만 고만한 스팩...  인상좋고  예의 바르고 성실한 정도....
삼성은 능력도 좋아야 하지만  착실하고 반듯한 사람을 선호한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진짜 인재는  인간의 질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병철 회장이 관상에 비상한 관심이 많았던 것도  인간의 질을 보기 위해서 였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을 국제적으로 망신을 시킨 윤창중 스캔들의 본질은
<그가 무슨짓을 했느냐>가 아니라 ,  <왜 그런 사람이 그 자리에 있냐>가 아닐까요..
박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맨처음 간택한 사람이 윤창중 전 대변인입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 불통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밀어 부쳤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사람의 질이 어떠한지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실망스럽습니다.
그런 짓을 한 사람보다, 그런 사람을  그 위치에 세운 사람에 대해 너무도 실망스러웠습니다.
"통치자의 지력을 보려면 주변사람의 질을 보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비수처럼 마음에 꼽힙니다..
 왜 그런사람을 추천했느냐고 참모들을  질타할 수도 있습니다.
참모들이 훌륭한 조언을 했다면 대통령이 현명하게 판단했을 것 아니냐는 말도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훌륭한 조언은 군주의 현명함에서 기인한 것이지, 군주의 현명함이 참모들의 훌륭한 조언에 기인하지  않는다"
통치자가 현명해야 조언하는 자들도 현명하게 조언한다는 소리입니다.

나라를 통치하든 , 구멍가게를 운영하든, 작은 부서의 팀장을 하든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지성을 갖추고 정말 사람보는 안목부터 길러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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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1:04
서양에 마키아벨리가 있다면 동양엔 한비자가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제왕학의 고전이라면 <한비자>는 제왕학의 경전으로 통한다.
진시황이 한비자의 통치 철학을 빌려 천하를 통일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만큼 <한비자>에 담져진 지혜의 깊이가 범상치 않음은 분명하다.
<한비자> 공명편에 보면 재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 아무리 작은 나무라도 높은 산 위에 세워 놓으면 천 길 골짜기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이는 나무가 커서가 아니라 그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
포악한 걸왕이 천하를 다스렸던 것은 현명해서가 아니라 권세가 컸기 때문이다.
성인 요왕도 평범한 서민이었다면 세집도 바로 다스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권세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키 작은 나무라도 높은 곳에 서 있으면 키 큰 나무를 내려다볼 수 있듯,
어리석은 자도 권세가 있으면 현명한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법을 세우고 운영하는 술수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왕으로서의 권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세와 위세를 확보한 후에 법을 세우고 법을 사용해야 제대로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비자 사상의 핵심은 세.법.술(勢,法 術)이다.
통치자는 세(勢)를 획득하고  법(法)을 세운뒤 비로소 술(術)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勢)는  Force 곧 에너지다.
세를 획득한다는 것은 에너지 흐름을 장악하고 그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구 경기를 보면 수비수 실책 하나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고 상황이 역전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상대방의 기세에 눌려 주눅들기 시작하면  평소에 하지 않던 어이없는 실책을 하고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 분위기를 잡고 상승세를 타면 삼진만 당하던 선수조차 안타를 툭툭 쳐낸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중국팀이 한국팀만 만나면 공한증에 걸려 주눅든다.
과거 한국팀이 유럽팀만 만나면 힘을 못펴는것 또한 기세에 눌려 한수 접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세(勢)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실체이다.
 
권세, 기세, 대세..  모두 비슷한 맥락이다.
근면 성실한 것도 중요하고, 스팩을 쌓고 기술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는 세상이 흘러가는 대세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대세를 재대로 파악하고 그  대세에 올라타야 세상이 흘러가는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
대세에 올라타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가 가수 싸이다.
싸이는 스티브잡스가  열어준 스마트 세상에서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이 만들어 놓은 SNS의 덕을 톡톡히 봤다.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에  편승해 숟가락 하나 슬쩍 올려 놓았는데 얼떨결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바닥부터 박박기어서 한계단 한계단 올라간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대세에 올라타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필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운한 세대에 속한다. 대학을 졸업하던 그해 IMF가 터졌다.
쟁쟁한 인재들도 백수가 되던 시절이라 취업하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필자의 친구중에 두명의 친구가 기억난다.
한 친구는 비디오대여점을 했고, 한 친구는 게임방을 했다.
98년 당시만 해도 비디오대여점이 성행 했고 게임방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은 바야흐로 IT 시대로 접어 들고 있었다.
한 집에 한 대씩 컴퓨터가 보급 됐고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기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같은 게임이 청소년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엘빈토플러가 10년전에 예상했던 대로 세상은 어느덧 정보화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두 친구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비디오대여점을 선택한 친구는 큰 빚을 지고 망했고, 게임방을 선택한 친구는 대박을 맞았다.
누가 성실하고 게으르고의 문제가 아니였다.  누가 장사 수완이 좋고 나쁘고가 아니였다.
대세를 따르느냐 역행하느냐의 문제였다.
일단은 대세를 읽고 무조건 대세에 올라타고 봐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카카오톡의 기업가치가 1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탁월해서도 아니고 영업을 잘해서도 아니다.
스마트시대에 플랫폼의 한 축이 되어 세력을 구축해 버렸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만성적자에 시달렸지만 플렛폼 위에 게임을 장착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카카오톡 게임에서 한때 유행했던 "드레곤플라이트"라는 게임은 개발자 혼자서 만들었는데 불과 몇달사이에 백억대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싸이처럼 대세에 올라 탔기 때문이다.

세(勢)가 먼저고 법(法)이 다음이고 술(術)이 마지막이다.
이것을 거꾸로 하면 곤란하다.
투자를 하더라도 세(勢), 법(法), 술(術)의 순서로 하면 크게 낭패보는 일이 없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를 거꾸로 하고 있다.
시장의 큰 흐름에 관심이 없고 원칙과 기준이 불명확하면서 기술만 익히려 한다.
순서를 바꿔야 한다.

첫번째는 세(勢), 즉 시장의 대세를 보는 것이다.
주식투자일 경우 상승장인지, 하락장인지를 대세를 먼저 살피는 것이다.
대세를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승장이면 올라타고 하락장이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아야 함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시장에 순응한다" 고 표현하곤 하는데 곧 대세를 따르는 마음이다.
 
두번째는 법(法), 즉 나만의 법을 세워야 한다.
투자의 원칙과 기준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개별주는 하지 않고 시장 평균에 배팅한다.
여유자금으로만 한다. 여유자금도 최대 50%만 투자하고 나머지 50%는 히든카드로 남겨둔다.
이와같은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과 원칙을 만들어서 법을 세워야 한다.
 
마지막 세번째가 술(術)이다.
기술이고 테크닉이고 기법이다.
시장에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만큼 수 많은 기법들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에 관한 것은 나중의 일이고 장식에 해당된다.
안타까운 사실은 가장 중요하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듯 하기 때문에 개미들이 가장 많이 속는 부분이다.
서점에 깔려있는 주식관련 책 중 90% 이상은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기술이 좋아서 돈을 벌고, 기술이 나빠서 돈을 잃는 것이 아니다.
차트기술책 수백권을 독파한다고 돈 버는 것이 아니다. 
상승장에 올라타서 돈을 벌고, 하락장에서 장난치다 돈을 잃는 것이다.
시장의 대세에 따르며  명확한 투자 원칙을  확보하고 그 원칙대로 실천하면  화려한 투자기술이 없어도,  직장생활 하면서도 얼마든지 잘 할수 있다. 
이제 정리하자.
한비자 말한 세.법.술(勢,法 術)은 주도권을 잡고 상황을 통제하려 할때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계층적 구조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순위이자 TOP-DOWN 방식 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내려온다.
밑으로 내려올수록 가시적이고 구체적이기에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각각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알단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대세를 읽고 기준과 원칙을 세운 뒤에 비로소 각론으로 들어가는 사고의 틀을 갖추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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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1:03
종로5가를 지나가다 보면 장기두는 노인들이 많이 있다.
장기 두는 사람은 두명인데 주변을 둘러싸고 훈수두는 사람은 열명도 넘는다.
장기 두는 사람은 낑낑 거리는데 훈수 두는 사람들은  기가 막힌 작전을 쏟아 낸다.
그렇다. 장기 두는 것을 구경하면 장기 게임이 잘 보인다.
이상하리만큼 잘 보인다.
하지만 내가 직접 장기를 두면 상대가 무슨 꼼수를 쓰는지 잘 보이지 않고 실수를 연발하게 된다.
왜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그것은  게임에 참여하는 자와 게임은 보는 자의 시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축구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은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 한눈에 알아본다.
국가대표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보고도 답답하다고 한숨을 쉰다.
이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을 관망하는 자의 시야는 게임 전체이고  양팀을 동시에 보기 때문에 잘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에 직접 참여하게 되면 내포지션에서  상대를 보기 때문에 내가 보이지 않는다.
시야가 좁아진 것이다. 
시야가 좁아지면  전체 시야에서 바라보는 객관이 사라지고 내 주위만 보는 주관만 살아나게 된다.
객관을 보지 못하고 주관에 빠지면  조화를 깨버린다.
팀 플레이를 하지 못하고 개인기에 의존하면 강한 팀이  되지 못한다.
개인기가 아무리  뛰어난 축구 선수라도  시야가 좁아 게임을 읽는 눈이 없으면  훌륭한 개인기로 인해 팀을 망쳐 버린다.
그래서 기술 좋고 열심히 뛰고도 욕먹는 선수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삶의 시야를 넓혀 자기를 객관화해야 한다.
그래야 열심히 살고도 삶을 망치는 모순에서 벚어날 수 있다.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평가 받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는 "보기 싫은 현실도 보라" 이다.
카이사르가 발견한  인간의 결함은  일종의 자기 페쇄성이다.
스스로 함정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객관화를 이뤄내야 한다.
자기 객관화를 이뤄내지 못하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인정하고 싶은 것만 인정하게 된다.
마치  시야가 좁은 축구 선수와 같고 판 전체를 보지 못하고 내패만 쳐다보는 어설픈 타짜와  같다.
삶의 실력이  뛰어날리 없다. 삶의 경쟁력이 좋을리 만무하다.
게임 전체를 읽고 자신의 위치를 잘 이해하는 선수가  적을 한방에 무너뜨리는 킬패스를 잘 하듯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야  멋드러진 삶을 살아 갈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나를 위한 자기 객관화를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내가 내편이 되면 곤란하다.
게임 참여자로서의 포지션을 초월해서 게임 전체를 지켜보는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게임을 직접 뛰고 있는 축구 선수는  자기가 잘하고 있는 줄 알아도 감독이 볼때는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축구만 하더라도 자기 객관화가 매우 중요하다.
최소한 내가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선수들의 수준을 한단계 레벨업 시킨 방법  역시 선수들에게 자기객관화 훈련을  시키는 것이였다.
히딩크 감독은 경기가 끝나면  비디오 감독관인 고트비 코치를 시켜 경기 전체를  꼼꼼히 촬영하고 분석한 자료를 선수들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플레이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게 했다. 
경기가 끝나면 감독의  훈계를 듣고 끝내는  기존의 방식을  탈피해  선수  스스로가  자신이 뛰는 모습을 보게 함으로써  팀의 관점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객관화 시켜서  조화로운 팀, 그래서 막강한 팀으로 담금질 해나갔던 것이다.
 축구선수가 게임을 뛰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듯  분주한 삶 속에 정신 없이 살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과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에게  경기를 뛰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했듯이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무리 바빠도 최소한 하루에 30분 정도는 자신을 들여다 봐야 한다.
퇴근 시간에 일정한 거리를 걷든, 잠자기 전에 일기는 쓰든 이 시간만큼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 
마치 바둑 대국을 마치면 하나씩 복기 해보듯이 하루의 삶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져야  그 삶이 발전하게 된다.
자기를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갖는 것, 이것이 자기 객관화의 시작이다.
자기 객관화의 시간을 확보 했다면 자기를 바라보는 잣대도 있어야 한다.
삶에 대한 표준모형 즉,  어떤 삶을 살아야 겠다는 가치관,  무엇을  향해 나가고 있다는  방향성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치있는 삶, 의미있는 삶, 보람있는 삶, 성취하는 삶, 태어난 보람이  있는 삶, 한 번 살아봄직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들여다 볼수 있게 된다.
 
이렇듯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자신의 생활을 들여다 보며 삶의 표준모형에 맞게 살고 있는지  매일 들여다 보는 것은 일종의 생각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질서가 잡혀있는  생각은 잡생각이 아니라 사색이 된다.
프로세스가 잡혀 있는 생각이기 때문에  걱정하다 지치지 않고 , 엉뚱한 생각을 하다 방황하지 않고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 또한 정체는 삶이 아니라 진보하는 삶을 살게 된다.
자기 객관화는 어느날 문득  떠오르는 대로 한번 자신을 돌아본다고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규격화된  사색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그 프로세스에 반복적으로 태워야 한다.
그래야  삶의 엔진이 갖춰진다. 또한 그 엔진에 발동이 걸리면 삶 속에 에너지가 나오고 비로서 경쟁력을 갖추게 되고 매일 성장하고 성숙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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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1:02



날씨가 제법 추운 어느날 두 시간 정도는 걸으리라 작정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문을 빠져 나와 놀이터를  지나 나오는데  바닥에 50원이 떨어져 있었다.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닥은 젖어 있었다.
" 50원을 주워 말어 ".  찰라의 순간이였지만  잠시 갈등하다 그냥 지나쳤다.
가던길을 멈추고 땅바닥에  떨어진 물에 젖은 50원을 줍는 수고로움이  50원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50원이 원래 이렇게까지 가치 없지는 않았는데. '
순간 웃음이 나왔다..  50원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필자가 7살때의 일이다.. 
당시 종이딱지가 유행 했는데 어느날 태권V  그림이 그려진 신제품 고무딱지가 나왔다.
어린이들이 열광했다. 필자 또한  고무딱지가  너무도 갖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10원도 귀하던 시절 어머니 지갑에서 50원을 훔쳐 문방구로 향했다.
50원이 그렇게 큰 돈인지 몰랐다.
고무딱지를 사고도 돈이 남아서 과자를 사먹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머니가 지갑을 뒤지고 뭔가를 찾고 계셨다..
분명히 50원이 있었는데 없어졌다며 한참이나 50원을 찾고 계셨다.
순간 내가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딱지와 과자를 숨겼지만 이내 들켰다. 
그후로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없는걸로 봐서 크게 혼내시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튼 필자가 7살때 50원은  어른이라도 잃어버리면 한참을 찾을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돈이였다.
 
다시  시간이 흘러 필자가 13살때의 일이다..
제법 잘 사는 친구녀석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게서  50원을 빌려갔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돈을 갚지 않았다.   부자집 아들이라 50원이 그리 큰 돈이 아니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필자에겐 큰 돈이였다.
빨리 갚아 달라고 하기에는 부끄럽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까운 돈이였다.
그 친구는 며칠 후 까박 잊었다며 50원을  갚아줬다.
13살때 50원은  빌려주고 돌려받지 않으면  아까운 그런 돈이였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필자는 40대 중년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잘 살게 되었고  용돈 타쓰던 소년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 사이 50원짜리 동전은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이 세상 어딘가 70년대  50원짜리가 굴러 다닐 것이다.
50원짜리 동전은  변한것이 없다.
그러나 한때 귀한 대접을 받던 몸이 이제는 떨어져 있어도 줍는게 귀찮을 만큼 찬밥신세가 되었다.
그만큼 많은 돈이 풀려 돈의 가치가 떨어졌고,  50원을 손에 든 주인은 꼬맹이에서 어느덧 어른으로 바뀌었다...
50원을 바닥에 두고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세상에 영원 불변한 것은 없고 절대적인 것도 없다는 것을 세삼 깨달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50원짜리 동전이 감정이 있다면  자신의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냐며  슬퍼할지도 모른다.
자신은 변하지 않았는데 왜 다들 변했냐며 한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변하는 것을 받아드려야 한다.
 
자연은 날씨가 변하면 계절의 옷을 갈아 입는다.
새싹이 파릇하기도 하고,  입이 무성하기도 하고,  열매를 맺어 풍성하기도 하지만 때론 가지만 앙상하게 남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자연의 모습이다.
변화에 반응을 하는 것이 생명이다. 변화에 무감각해지는 것이 죽음이다.
변하는 것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고 감각을 잃어 버리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한다.
계절이 바뀌듯 세상은 늘 변한다. 그 변화에 맞춰  내가 옷을 맞춰 입어야 한다.
감각이 무디어 변하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면  오해하게 되고 헛발질을 하게 된다.
 변하지 않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10년전 재테크 책을 읽고  아파트 타령 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투자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하다못해 남녀간의 사랑도 그러하리라..
변하는 것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변한다는 것을 받아드리고 그때마다 가장 어울리는 옷을 차려 입는 것이 중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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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0:53
"사는 게 힘들면 고뇌에 빠지고 사는 게 편하면 권태에 빠진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힘든 것 하나 없고 모든 일이 척척 잘 풀리면 마냥 행복할 것 같지만 삶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비바람 몰아치고 풍랑이 이는 바다도 힘들지만, 아무런 바람이 불지 않는 고요한 바다도 괴로운건 매 한가지다.
사는 게 힘들어도 행복해 하는 이유는 삶에 감격이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게 편해도 권태속에 괴로워 하는 이유는 삶에 감격이 없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스토리가 있는 삶을 살아야 그 삶에 감동이 있고 텅비어도 충만함을  만끽할 수 있다.
설악산을 갔는데 케이블카 타고 단 번에 휙 올라가면 감동이 없다.
좋은 구경 다 하고 먹을 것 다 먹고  내려와도 웬지 허전하다.
스토리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감동할 것도 기억할 것도 없다.
추억이 되지 못하고 금방 잊혀지고 만다..
그러나 산 밑에서부터 무거운 배낭 짊어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서로 밀어주고 땡겨주고 숨을 헐떡이며 한발 한발 오르며 정상을 밟으면 스토리가 생겨난다.
산을 내려와 일행들과 막걸리 한잔 하더라도 이야기가 풍성하고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게 된다.
 
필자가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후반에 고물 자동차를 몰고 친구 2명과 지리산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은 시절이고 혈기 왕성한 때라 이것저것 알아 보지도 않고  물 한병 사들고 무작정 떠났다
준비없이 가다 보니 험한 코스를 오르게 되었다. 
지리산이 그렇게 높은 줄 몰랐다. 정말 죽도록 고생했다...
그렇게 고생 고생해서 새벽녁에 천왕봉에 도착했다.
얼마후 구름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니 절로  눈물이 났다.
산을 오르며 수 많은 이야기 거리가 생겨 났기에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일출이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다.
그 많은 이야기 거리는 시간이 흐르자 추억으로 남았고 이제 아름다운 삶의 한 조각이 되었다.
 
요즘 젊은 청춘들의 사랑은 속전속결이라고 한다.
그런데 몇 번 만나지 않고  곧바로 속성코스로 가버리면 그 사랑은 이내 식어 버린다.
이런 만남은 러브스토리가 되지 못한다.
애절함도, 애뜻함도, 설레임도 없다.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밋밋하고 감동이 부족하다. 
몇번 다투다 헤어지면 그만이 되고  나중에는 누굴 만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혼자 사랑하며 속 앓이도 해보고, 마음을 시에 담에 선물도 줘보고 ,이름만 불러도 설레어 보고,너무 그리워 눈물도 흘려보고, 포옹하는 것만으로도 가슴벅찬 그런 사랑은 오래간다.
왜냐하면 그 사랑에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풍성한 사랑은 애절하고 애뜻하고 감동적이다.
한류 열풍의 주역 한국 드라마의 주제는  거의 비슷하다. 
이야기의 구성이 간단하다.
주인공이 다르고 배경이 다를 뿐 거의 신데렐라 이야기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받던  신델렐라가 왕자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야기나,   평범한 여자 주인공이  대기업 회장 아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야기나 기본 구성은 똑같다.
그런데도 그 뻔한  내용에 열광하는 이유는 드라마 속에 기승전결이 있고 반전이 있고 풍부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삶에 감격이 있으려면 그 삶에 스토리가 풍성해야 한다.
그래서 틈만나면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결과에만 의미를 둘 게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 의미를 둬야 한다.
삶에 의미를 두는 과정이  있어야 스토리가 만들어 진다.

돈 돈 돈  돈타령만 하고, 무조건 내꺼 내꺼 하며 내주머니만 채우려는 삶은 스토리가 빈약하다.
로또 한방에 일확천금을 얻는다 한들 그 삶을 풍요로운 이야기 거리로 채우지 못하면  삶은 공허해 진다.
돈이 되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삶에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돈만 벌어다 주는 남편, 밥만 해주는 아내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딸아이 손잡고 딸기밭도 다녀보고, 아내와 함께 DIY 가구도 만들어 보고, 즉흥적으로 가족을 모두 이끌고  동해안으로 여행을 가보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스토리가 풍성한 가정은  밥만 안 굶어도 행복할 수 있고 삶에 풍낭이 일어도 쉽게 깨지지 않는다..
삶에 채워 넣을  스토리가 빈약하다면 작은 것부터라도 하나씩 채워보자. 
주말에 하루 종일 TV를 껴않고 있기보다 조금 귀찮더라도  가족들 손잡고 둘레길이라도 걸어 보는 것이다.
내 삶을 어떤 스토리로 채울것인가에 따라   삶은 명작이 되기도 하고 졸작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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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0:50

사람이면 누구나 고민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진로문제, 직장문제, 돈 문제, 건강문제, 가정문제, 부부문제, 결혼문제  .....
모두들 이루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문제를 한보다리씩 짊어지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필자는 고민거리가 별로 없다.
결혼을 했으니 결혼 문제가 없고,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직장문제가 없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진로 문제가 없고, 집사람과 다툴 일이 별로 없고 아이도 잘 크고 있어서 가정문제도 없다..
그러나 필자의  삶이 원래 이렇게  고요하지는 않았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모든 것이 문제였다..  
고민투성이에 걱정은 태산보다도 많았다..
진로문제, 직장문제, 돈 문제, 결혼문제....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삶이 꼬여도 너무 꼬여 있었다. 안 풀려도 너무 안 풀렸다..
여름이면 찜통이 되고 겨울이면 냉장고 되는 옥탑방에 자취하며  매일 우울했고 매일 슬펐다.
문제를 풀어야 했고, 고민을 이겨내야 했고, 걱정은 떨쳐버려야 했다..
마음은 복잡했고 뭐든 짜증났고 도무지 의욕이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바라다 봤다..
초최한 몰골,우울한 모습, 슬픈 표정...  낯설었다..
나 같지 않은 내가 서 있었다.
방을 둘러보았다...  내 마음처럼 복잡하고 지저분했다.
가방은 던져져 있고, 보다 만 책은 뒹굴어 다니고, 옷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고민하느라, 걱정하느라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문득 청소가 하고 싶어졌다..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하고
방 구석구석을 말끔히 닦아냈다.
청소를 다한 후 멋진 그림을 하나 사서 벽에 걸어 놓고 , 이쁜 화분도 사서 책상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옷을 단정히 입고 다시 거울을 바라봤다..
면도를 깜끔히 하고 무스를 바르고 머리를 빚어 넘긴 보기 좋은 청년이 거울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방을 둘러 보았다..
단정하고 깔끔하고 보기 좋았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고요해 졌다.
아팠던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은듯 잔잔해졌다..
 
문득 깨달았다.. 
고민을 해결하려, 문제를 풀어보려 아둥바둥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지금 당장 고민하고 걱정하고 고뇌한다고  그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걱정거리 , 문제거리, 고뇌 거리는 그냥 내려 놓으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고민이 있다면, 걱정이 있다면  그냥 내려 놓으면 된다.
무겁고, 힘들고 괴로우면 그냥 내려 놓으면 된다..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고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거운 바위를 짊어지고는 낑낑 거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과거를 쳐다보고, 미래를 내다보며 사는라 오늘을  재대로 살지 못해서는 곤란하다.
정말 사는 것은 오늘이고 나에게 소중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그래서 오늘을 열심히 살고, 오늘에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후회없이 살면 되는 것이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지금 열심히 살고, 지금 즐거워하고, 지금 행복해 하면 되는 것이다..
앞서 필자가  고민거리가 별로 없다고 말한 것은 진짜 아무런 고민거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 뿐이다.
모두 내려 놓았기 때문이다..
무거운 짊을 짊어지고 무거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나간 과거는 과거대로 두고, 다가울 미래는 미래대로 두고, 그저 오늘을 잘 살면 되는 것이다.
오늘을 잘 사는 것이 과거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고,  오늘을 잘 사는 것이 미래를 희망차게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는게 버겁고 고단 하다면 지금 이순간 모든 짊은 내려 놓고 오늘을 살아보자.
오늘이 과거가 되고 오늘이 미래가 될테니 너무 과거에 연연하고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생은 오늘의 조각들이 모여서  완성되는 퍼즐이기에 오늘  있어야 할 위치에 단정하게 존재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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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0:49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평생동안 지속되는 로맨스다"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와일드의 말이다.
자존감!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자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의 인식이다.
뿌리 없는 나무는 생명력이 없듯, 기초가 허술한 건물은 언젠가 무너지고 말듯 자존감이 없는 삶은 쉬이 허물어진다.
자존감이 결핍되면 진상남이 되고  된장녀가 되고 성형중독이 된다.
명품으로 온몸을 휘둘러야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고 믿게 되고 , 타인에게 비취는 자신의 모습이 늘 궁금해진다. 
이런 삶은  멋이 없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신데렐라가 되었던 연예인이  어느 순간 인기가 시들해지고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우울증을 앓거나 심할 경우 자살 하는 경우도 있다.
"나를 왜 사랑하지 않느냐"고,  "대중들은 왜 나에게 무관심하냐"고, "세상은 왜 나를 버렸냐"고 분노하다 삶을 버려 버린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운명 앞에 어리광을 부린 것이다.
어린애가 때를 쓰며 밥을 굶듯이  운명앞에  때를 쓰다 자신을 굶겨 죽여버린 것이다.
삶의 기초가 부실하고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삶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은 자존감이다.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명품으로 휘두리지 않아도,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좋은 직장에 화려한 명함을 소유하지 않아도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 앞에 주눅들지 않고 당당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누구에게 이해시키려  거짓된 말로 꾸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홀로 대면 했을 때 정말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이 둥글게 둥글게 잘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뿌리가  땅속 깊이 박혔기 때문에  어지간한 비바람이 불어도 잘 견디고  삶의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공급 받고 무럭무럭 잘 자라는 것이다.
반면, 부모의 사랑을 받지 않고 자란 사람이 삐뚤어지고 어긋나는 것 또한  다 이유가 있다.
삶을 지탱해주는 뿌리가 허약하기 때문에 늘 허기지고 궁핍하고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불안하고 분노해 한다. 살려 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고 몸부림 치는 것이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라야 상대를 존중할 줄 알고 겸손 할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상대를 사랑할 수 있고  남의 성공에 박수쳐줄 수 있다.
나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고난과 역경이 찾아와도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다.
 
자존감은  "나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존감은 남보다 잘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타인보다 잘 났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이기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식이 여러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 자식이 다른 자식보다 잘 났기 때문이 아니다.
내 자식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이미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기에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혹여 부모로부터 차고 넘치는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그래서 자존감이 빈약하고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면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에게서 한 발자욱 떨어져 나를 바라보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했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측은히 여기고 격려하고  다독거리고  힘을 주고 사랑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 맞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자연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내가 존귀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면 그 삶이 반석 위에 우뚝 서게 되고  삶의 뿌리가 깊어지게 된다.
어지간한 고난과 역경이 찾아 와도 이겨 낼 수 있고  천정에서 바닥까지 떨어지더라고 훌훌털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나를 존중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
나에게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발견하면 되고 , 그래도 없으면 만들어 나가면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존감은 있으나 마나한 장식품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할 삶의 필수품이다.
자존감은 삶을 지탱하는 뿌리이자 코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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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0:43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가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10년후 있었던 암스트롱의  달착륙 만큼이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공적을 인정받아 영국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하사 받아  "힐러리경"으로 불리게 된다..
그런데  힐러리경의 빛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
"텐진 노르게이"라는  세르파다..
사실 세르파는 직업 이름이 아니라 히말리야의 고산족 이름이다...
TV를 통해 까무잡잡한 얼굴에 짐을 들어주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되는데, 히말리야를 정복하는 사람중에 세르파의 도움없이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
세르파는  단순히 짐을 들어주는 짐꾼이  아니라 사실 길 안내자다.
10살때부터 히말리야 산을  뒷동산 오르듯 탔기 때문에 히말리야 산길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한다.
비록 처음 가는 길이라도  이것이 길인지  길이 아닌 지를 구분해낸다...
힐러리 역시 텐지 노르게이의 도움이 없었다면  에베르스트를 정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도 상직적인 이야기지만  산을 오를때는 길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장비, 체력, 정신력, 기술.. 어느것 하나 중요하지  않는 게 없지만  이 모든 것은 길을  안 후에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장작을 팰때도  나무의 결을 따라 찍어야 한다..
아무리 도끼날을 세우고  힘 센 장정이 내리찍어도 결을 따라 치지 않으면 도끼 자루가 부러지고 튕겨 나간다.. 결을 따라 찍는게  우선이다..
우물을 팔때는 맥을 잡아야 하고  석유를 캘때도 유전에다 파이프를 박아야  한다..
맥이 있다는 것이다...
범선이 바다를 항해 할때도  바람의 방향을 잡고 그 바람을 이용해야 한다...
필자가 지금 말하는 것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에 대한 이야기다...
하부구조는 상부구조에 종속된다...
모든 것이 이런 구조다..
길을 알고 맥을 잡고 결을 따르고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장비가 좋고 체력이 좋고 힘이 좋은 것은  그 후의 문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삶의 결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말한다.. 성취를  말하고 자아실현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노력하라고 한다.. 밤잠을 줄이고 아침형 인간이 되라고 한다..
뭐든 만 번은 해야 제대로 할거라 말한다..  천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을 반대로 잡은 것이다...  순서가 바뀐 것이다...
모두 하부구조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수 많은 성공학자들이 있고 성공학과 관련된 많은 책들이 있다...
정말 고수들은 노력하라는 말을 먼저 하지 않다...
참고 인내하고  될때까지 삽질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바닥에서 박박기고 올라가야  목표를 성취하고  꿈을 이룰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정반대다...
소망을 이룬 모습을 상상하라고 말한다..
성취하는 것을 믿어 의심치 말라고 말한다... 
 바닥에서 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성취한 모습을 느끼고 만끽하고 설레야 한다..
그래야 노력하는 인간이 된다. 그래야 인내하고 새벽을 깨우고 만번을 시도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소망하는 것이 있는가?
그러면 그 소망이 이뤄질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 된다..
될까 말까.. 이게 가능할까 ? 이런  의구심을 가질게 아니라  너무도 당연히 이뤄짐을 믿으면 된다..
너무도 당연히 성취 될것이기에 지금 당장 기쁨을 만끽하고 설레게 된다.. 
짦은 삶 동안 수많은 것을 성취하고 간 스티브잡스가 무슨말을 했는지 귀담아 들어야 한다.
갈망하라 갈망하라... 
잡스가 던지는 메세지 역시 상부구조의 언어이다.
소망하는 바를 눈에 잡힐듯이 선명히 그리고 매일 생각하면 언젠가 손에 잡히게 된다..
소망하는 것이 있는가? 성취하고픈 꿈이 있는가?
그것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인내하고 참으면 얻게 되는게 아니다.
간절히 얻고 싶어하고 , 간절히 이루고 싶어하고 ,간절히 되고 싶어야 이루게 된다..
이것이 삶의 결이고 맥이고  성취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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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0:40
지난 1000년동안 최고의 인물은 누구일까~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타임지 등 세계적인 시사주간지는  칭기스칸을 ‘밀레니엄맨’으로 선정했다.
그 이유는 칭기스칸이 서로 고립되었던 동서양의 문명, 물자, 과학기술, 정보, 사람을 빠른 속도로 이동·연결시켜 세계를 좁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999년 12월31일!
새로운 밀레니엄맨으로 누가 뽑일까~~
아직 990년이 남아 누가 뽑힐지 알길이 없지만 "스티브잡스"도 후보 명단에 오르지 않을까
우리는 그와 동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그가 어떤 사고를 치고 갔는지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후대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평가할 것이다..
"스티브잡스는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대학 연구소에나 있던 컴퓨터를 집집마다 한대씩 있게 만들었다.. 
퍼스널 컴퓨터 시대를 연것이다..
그리고 30년 후 집집마다 한대씩 있던 컴퓨터를 초딩들도 손바닥에 들고 다니게 만들었다..
스마트 시대를 연것이다..
물론 스티브잡스 혼자 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방향을 제시했다..
오래전 칭기스칸 혼자서 세계를 흔들어 깨운것은 아니지만 그가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했듯이~~
 
스티브잡스는 인류에게 스마트폰 이라는 요술램프 하나씩 선물로 주고 갔다..
고마운 일이다...
그 요술램프를 잘 쓰는 사람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그 요술램프를 잘못쓰고 있는 사람에게는~~
인류는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로 점점 퇴화 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그나마 책을 보는 사람들이 몇명 보였다..
이제는 책을 보는 사람이 정말 드물다.
모두들 손바닥만 들여다 보고 있다... 카톡을 하거나 카톡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뒤적인다..
세대가 젊을수록 기이한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하루종일 손바닥만 쳐다본다... 정말 쉬지도 않고 하루종일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그렇게 잠들기 전까지 손바닥만 쳐다보다 잠에든다....
이런 모습을 보면 무서워진다.. 6살난 딸아이가 살게될 세상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스마트폰을 보고 고마워만 하지말고 무서워도 해야한다..
정말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내 삶을 편하게도 해주지만 내 영혼을 망칠수도 있기 때문이다...
걸어야 한다... 아니 걸어야만 한다... 그래야 내 영혼이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필자는 주말이면 걷는다... 10킬로, 20킬로를 무작정 걷는다..
3시간 4시간을 걷는다. 걷고 또 걷는다...
살빼기 위해서 걷는게 아니다..
운동하기 위해 걷는 것도 아니다..
집사람에게는 운동하고 온다고 말하고 나가지만 사실 생각하기 위해 걷는다..
내가 살아 있음을 자각하기 위해서다.  쉬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걷는 것이다..
그렇게 걷다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많은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일주일 동안 머리속에 구겨 넣었던 정보들이 정리가 되고 연결이 되고 교통정리가 된다.
즐거운 생각, 행복한 생각, 잘 될것이는 생각을 하면 정말 즐겁고 행복하고 일이 잘 풀린다..
 
스마트 폰에게 사색을 빼앗겨 버린 현대인은 다시 빼앗아 와야 한다..
한 때 새벽에 일어나  명상도 해봤지만 졸리기만 하더라~
걷는 것 만큼 좋은 것이 없다.. 걷자... 아니 걸어야만 한다..
옛날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많이 걷고 많이 생각하고 살았다...
얻는 게 있으면 빼앗기는게 있기 마련이다..
스마트폰에게 편리함과 쾌락을 얻었다면 스마트폰에게 빼앗긴 것은 무엇일까..
혹시 나의 영혼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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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00:34
어떤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할까~
덴마크? 노르웨이? 뉴질랜드? 호주?
그렇다.. 모두 잘 사는 나라들이다.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번영지수(Prosperity Index)에서 늘 상위를 차지하는 나라들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영어권 국가인 호주 , 뉴질랜드, 캐나다로 이민을 가고 싶어 한다.
정말 많이들 가고 싶어 한다..
그렇게 이민을 가면 행복해질까?
이를 어쩌나~ 얼마나 행복하냐를 묻는 행복지수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나라들은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아니다..
코스타리카, 부탄, 베트남 , 파나마....   모두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아니, 겨우 겨우 밥 굶지 않고 먹고 사는 정도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들 나라들은  행복지수를 발표 할때마다 언제나 탑클래스다..
그나마 잘사는 나라에 속하는 대한민국은 60위권이고 우리보다 더 잘사는 일본은 우리보다 못하고 세계최강 미국은 100위밖에 있어 명함도 못내민다....
물론  아프리카 사람들은  행복지수가 최하위권이다.. 
물이 모자라서 목마르니까.. 
밥이 모자라서 배가 고프니까...  
맨날 전쟁이여서 무서우니까..
그런데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문제만 해결하고 나면 행복은 부유한것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호주로, 캐나다로 이민간다고 반드시 행복해진다고 볼 수 없다..
우리나라도 의식주 문제는 해결됐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네마네 해도 전쟁의 공포로 잠못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행복햐냐고 물어보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우리보다 못사는  중국사람들도 우리보다 행복하다고 한다.. 
아시아 빈국으로 전락한 필리핀 사람들도 우리보다 행복하다고 한다...
왜이럴까~~
한가지 힌트가 있다..
OECD 국가중  자살률 1위는 대한민국이다..
청소년 행복지수 꼴찌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이다..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운다..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있다.. 상대와 비교하게 만든다..
서울, 지방 상관없이 의대, SKY, 서울소재 대학, 지방국립대, 지방 사립대, 전문대  순으로 줄을 세운다..
축에 못끼면  자존심이 망가진다. 죽고 싶을만큼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정말 스스로 죽는 애들도 많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명문대를  졸업해도 똑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또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줄을 세운다..  상대와 비교하게 만든다..
삼성,엘지, 현대....   사시, 행시... 이정도는 되야 한다고  주변에서 잔소리한다..
이게 어려우면 100대기업 벳지를 달거나 하다못해 7급 공무원은 되라고 한다...
그 말에 세뇌 되어 이 정도에 못들어가면 자존심이 망가진다. 죽고 싶어진다.. 그래서 많이도 죽는다..
그렇게 고생해서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 또 줄 세운다.. 또 비교 시킨다..
그래서 남들보다 못하면 자존심이 상한다..  죽고 싶을 만큼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죽는다...
어느덧 마흔을 넘긴다...
이제 좀 살만한가 싶은데 또 줄을 세운다..  출신 학교가 중요하지 않다..
무슨 회사에 다니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돈만 많으면 된다... 돈이 많고 적음으로 줄을 세운다....
 먹고 살만한데..  밥을 굶지 않는데 .. 당장 전쟁나지도 않는데  남들과 비교하면 죽고 싶어진다...
남들 보다 못사니깐... 남들 가진것이 나에게 없으니까... 
정말  먹을게 없어 배고프지 않다면,
정말 마실물이 없어 목마르지 않다면,  
총 맞아 죽지 않을까 무섭지만 않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행복해도 되는 사람이다..
남들과 비교만 하지 않으면 된다...  
상대의 장점과 나의 약점으로 불공정하게 비교 하지 않으면 된다..
남이 가진 것과 내게 없는 것으로 비교해서 스스로 우울해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이 없다...
 
코스타리카 사람이 왜 우리보다 행복할까?   우리보다 못사는데!
부탄 사람들이 왜 우리보다 행복할까? 우리보다 못사는데!
파나마 사람들이 왜 우리보다 행복할까?  우리보다 못하는데!
너네들 왜 우리보다 행복한거니? 기분 나쁘게~~~
바로 그것 때문이다... 남들과 비교해서 불행해지는 그 마음.
배고프지 않아  다행이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목마르지 않아 다행이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무섭지 않아 다행이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행복해도 되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행복하지 않다면 속고 있는 것이다...
줄을 세워놓고 앞줄에 서서 상대와 비교해서 행복해 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고 믿는 나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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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2. 7. 23. 09:22
"불행의 시작은 남과 비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깨달은(?) 불행에 대한 인식이다.
"내가 어째서 불행한가"를 생각하기보다 "내가 어째서 행복한가"를 생각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불행의 이유를 찾다보면 대게 우울해지지만 행복의 이유를 찾다보면 어느덧 기분이 좋아진다.

이순신이 살던 임진왜란 때를 생각해본다.
조선반도 전체 인구의 반이 죽었던 7년전쟁.
조선 군인으로 끌려가 용인전투에서 죽거나 일본 군인으로 끌려가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놈들 틈에 끼어서 죽거나..
굶어 죽거나 칼맞아 죽거나 총 맞아 죽거나 병에 걸려 죽거나 ...
이렇게 죽은 사람이 전체인구의 반이였다니...
불안과 공포속에서 하루도 자유롭지 못했을 그 때를 살았던 사람들의 수많은 고통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구걸하는 거지도 조금만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하루 세끼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어지간하면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 하고 싶은 것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건 뭐든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가...
내가 살고 있는 오늘 이라는 삶은  400년전 조선 땅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삶이 아니던가..

이런 삶을 살고 있으면서 무엇이 조금 안 된다고,
마음 먹은대로 잘 안된다고 쉽게 낙심하고 좌절한다면..
순간이라도 이렇게 못난 생각을 한다면 그건 내게 분에 넘치는 사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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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2. 3. 15. 17:48

PC 혁명을 주도한 빌게이츠가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었을까요?
스마트 혁명을  이끌어 낸 스티브잡스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을까요?
두 말하면 잔소리고  더 말하면 입아프겠죠..
정말 큰 일을 해낸 훌륭한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먼 미래에는  이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차대전 막바지... 핵무기  개발을 총괄 지휘했던  오펜하이머가   훗날  핵무기 확산을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 가담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전쟁을 종식시키고 세계 평화에 도움이 될줄  알았는데   핵무기가 일본에 투하된 뒤 수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강대국들이 핵무기 경쟁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괴물이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기기들이 사실  인간을 망치는 괴물인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PC와 인터넷, 스마트 폰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잘만 돌아갔습니다...
스마트폰 없이도 약속 잡고   데이트 잘 하고  할 것 다 하고 살았습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있어서  우리는 과연 행복해졌을까요??
과연  우리는 득탬 한 것일까요..??
아주 멋진 아이템을 얻었지만  그 댓가로 더 귀한 아이템을 빼앗긴 것은 아닐까요??
요즘 지하철을 타면 모두들 손바닥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잠자기 전에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한번 조회하고 자고, 새벽에 잠을 깨면 시간 한번 보고 인터넷 잠깐 하고 자고, 아침에 잠을 깨기 전에 이불속에서도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립니다..
버스를 타나 지하철을 타나  어딜 가나  모두들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인간이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인간의 영혼을 잡아 먹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모두들 "검색"을 하느라 "사색"을 잃어버렸습니다..
스마트폰 보느라, 아이패드,  겔력시탭 보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잔인하고 무서워졌습니다..  어른들 세계보다 더 살벌하다고 합니다.
어린애들이 즐기고 있는 온라인 게임을 보면   회칼을 들고 목을 따고  총을 들고 마구 쏴죽입니다..
컴퓨터를 이용해 잔인함과 포학함을  익히고  실습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초딩들도 마음만 먹으면  낯뜨거운 성인동영상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인터넷... 잘만 활용하면 정말 훌륭한 것입니다..
정말 편리한 물건이고 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댓가로  영혼이 빼앗기는 것이 아닌지 생각이 깊어집니다..
고백컨데 저 역시 스마트폰을 쓴 이후로  독서량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생각하고 사색하는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카톡  하느라, 인터넷 검색하느라, 맛집 찾느라  책보고 사색할 여유가 없어졌습니다..
디지털 기기는 불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잘만 쓰면 아주 유용하지만  서툴게 다루면 큰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두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을때까지  계속 그것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느날 문득 그것들이 괴물로 보이더군요..
인간이 스마트폰을 쓰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 폰이 인간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착각이들  정도 입니다.
많이 사용한다고  반드시 활용을 잘 하는 것은 아닐듯 합니다..
좋은 음식이라고 많이 먹으면 안 되듯이 ,  디지털 기기가 편리함과 즐거움을 준다고 하여 너무 과하게 사용하면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요...
디지털 기기에 너무 많은 시간과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면  디지털 괴물에 빼앗긴 우리의 시간과 영혼을  다시 빼앗아 와야 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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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1. 10. 18. 17:31

황우석 박사와 심형래 감독 !  
이 두 사람을  비교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들은  일하는 분야가  다를뿐만 아니라  지금 처한 환경 또한 너무도 다릅니다.
그런데  심형래 감독이  몰락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몇 해전 전 국민을  패닉으로 몰아 넣었던  황우석 박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둘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심형래 감독은  한때  "신지식인 1호"라는  칭호를 받으며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 했습니다.
그 호칭을 얻기 위해 물밑에서 어떤 로비를 했는지  알길은 없지만 그 또한 능력이면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뢰메, 영구와 땡칠이 등 보기에 따라 조잡하기 그지 없는 영화 몇편 만든 것이 전부인 심형래가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헐리우드를 뛰어 넘는 SF 영화를 만든다고 배짱 튕길 때 국민 모두는 반신반의 했지만 왠지 모르게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쉽진 않아 보였지만 왠지 헐리우드를 뛰어넘는 SF 대작이 나올 것 같은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 입니다.. 
그렇게 10년을 공들여 만든 세 편의 영화 용가리 ,  디워,  라스트갓파더 ...
솔직히 모두 졸작 이였습니다.
그러나  무모하기까지 했던 그의 도전정신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제가 보기에는  분명 대단한 것이였습니다..
어쨌든 심형래 감독은 돌이키기 어려운 큰  실패를 했습니다..
이제 그의 치부가 하나 둘씩 들어나기 시작합니다.
직원 월급도 재 때 주지 않고, 카지노에 들락거리고, 사재총도 만들고,  알고 봤더니 로비의 달인이고.......
그의 실패 뒤에  그동안 감춰졌던 부도덕함이  뒤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죄 중에 최고의 죄를 들라면 나라를 뒤 업는 반역죄 일것입니다..
그런데 반역이 성공하면 혁명이 됩니다..
혁명이  실패하면  혁명을 이루기 위해   감행 했던 모든 행위는 악행이 됩니다.
하극상은 기본이고 , 명령 불복종, 살인...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죄를 뒤집어 씁니다.
그러나  혁명이 성공하면  그 모든 악행이 용감한 행위로 둔갑 합니다..
만약 심형래 감독이  아바타 같은  대작을 만들어 큰 성공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심형래 감독을 해석하는 프리즘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한 것도 벤처 신화에 나오는 단골 메뉴처럼 미화 됐을 것 입니다.
그의 정관계 로비 사실을 두고도  제작 환경이 열악한  영화계의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을 것이고,  심형래 감독의 정치적 감각을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카지노에 들락 거린 것도 정선 카지노장이 불법 도박장은 아니라며 옹호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실패 했기 때문에 그의 인격적인 결함이 더욱 커보이고 그런 인격적 결함이 실패의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심형래 라는 인간은 지금 파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형래 감독이 처음부터 안 되는줄 알면서도 사기 치기를 작정하고 덤벼 들었던 것은 아닐 듯 합니다.
결론적으로 코미디언 심형래가 헐리우드에 도전장을  내던진 것 자체가 코미디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버린다면 너무도 슬프고 허탈한  코미디가 되어버리고 말것입니다. 
한 때 그의 긍정적인 가치였던 도전정신, 개척정신, 꿈을 향한 열정.... 
이 모든 것이 허상이 아니였길 바래봅니다. 
인간 심형래는 평생동안 쌓아왔던 부와 명예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과  이루고 싶었던 꿈 ..
그는 그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심형래라는 인간이 얼마나 나쁜 인간이였나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듯 합니다..
지금 심형래는 최악의  상황에 놓였고  극한의 코너에 몰려 있습니다..
이런 심형래에게  덩달아 돌을 던지지기에는 저 또한 너무도 허물 많은 인간입니다..
그가 죄를 지었다면 죄 값을 달게 받아야 하겠지만  그가 품었던 꿈과 열정이 진실이였다면 언젠가 다시 부활하길  바랍니다.
황우석 박사 역시 한 때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을 받다가 하루 아침에   파멸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황우석 박사 역시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과학자로서 양심을 저버렸고, 대한민국 얼굴에 먹칠을 했으며 돌이킬수 없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말하던 것이 모두  100%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였음이  서서히 증명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얼마전 멸종위기에 있던 코요테 복제에 성공했음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황우석 박사가  정말 대단한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 좌절과 수치와  절망을 딛고  잡초처럼 죽지 않고  올라 왔는지 한 인간으로서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무라이처럼 할복 자살해도  시원찮을 판에  다시 후원자를 찾아내고 연구원을 끌어모으고 연구를 계속했다는  사실이 보기에 따라 뻔뻔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의 열정이  옛날 그의 논문처럼 모두 거짓은 아니였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심형래 감독의  삶이  황우석 박사의 데자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의 이런 말들이 국민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한 인간에게 너무도 자나친 동정을 보이는 것임을 잘 알지만  ..
인간 심형래가 이대로 실패로 인해 좌절하는 인간으로 끝나기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게 부활하는 인간이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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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비판의 댓글이 더 많은 걸 보니 저의 생각이 객관적이지 못한 듯 합니다.
제가 심형래씨를  너무 동정하고 있거나  그의 과오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그에게 제기 되는 의혹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고  구재불능한 인간인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실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저질렀다는 로비와 비리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생각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원들의 열정을 짜내고 사유화한 것 역시 아주  비열할 정도로 나쁜 행위임은 분명합니다.. 
책임져야 할 것은 분명히 책임져야 하고 죄를 지었다면 당연히 죄값을 치러야 할 것 입니다..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릴적  많은 웃음을 줬던  영구 심형래가  이렇게 망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안타까워하는 것이 그의 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번글은 제가 생각하도 영~~ 아닌 글 같습니다...  지극히 주간적이고 감정적인 글인거 같네요....
아무튼 심형래씨가 책임 질 것은 책임지고, 잘못 한 것은 뉘우 치고,  깊은 좌절을 딪고  일어서는  모습을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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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0. 9. 2. 08:48

아침 일찍 창경궁 담벼락을 따라 길게 뻗은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걷는 일은 너무도 상쾌하다.
그렇게 30분 정도 걷다보면 부족한 운동도 할 수있고, 어설프나마 칸트 흉내내며 사색도 할 수 있어 너무 좋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비오는 모습을 유난히 좋아해서 그 날은 집을 나설때부터 설레였다.
토닥토닥 우산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듣기 좋다.
붉게 물든 플라타너스 낙엽을 밝으며 고궁 옆을 걷는 것은 너무도 즐겁고 행복하다.
비가 와서 일까 그 날은 낙엽이 온 길을 다 덮었다.
마치 숲속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 였다.
비오는 혜화동 거리는 그렇게 보기 좋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또 그 거리를 걸었다.
그 많던 낙엽은 온데 간데 없고 예전처럼 깨끗하고 잘 정돈된 거리가 되어 있었다.
저 멀리서 낙엽을 치우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고향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모습..
평소와 똑같은 모습인데...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주황색 옷을 입고 늘 보던 모습 바로 그 모습인데 뭔가 다르게 보였다.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셨다.
아마 새벽부터 그 많던 낙엽을 치웠으리라.
날씨도 추운데 비에 젖은 낙엽이 빗자루로 쓸리지도 않아 일일이 손으로 담았을 것이다.
덩치크고 양도 많은 플라타너스 낙엽을 치우며 얼마나 원망 했을까.
나에겐 낭만의 모습이 그 누군가엔 원망의 모습이 될 수 있구나..
내가 비오는 소리와 낙엽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짖고 있을 때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고 슬퍼하며 걱정하며 짜증이 났을 수도 있겠지..
삶은 이토록 모순된 것일까.
아마 그것은 모순이 아니라 다양한 우리네 삶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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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