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오징어를 구워 팔아서 용돈을 벌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늘 방학만 되면 용돈을 벌기 위해
친한 친구를 꼬셔서 막노동을 하며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러던 어느 해 50CC 오토바이를 한대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 넓지 않는 경주 시가지는 50CC 오토바이만 있으면 그랜져, 벤츠가 부럽지 않았다.
기동력이 생기자 욕심이 생겨났다.
한참 무더위가 기승을 불이던 8월에 첨성대 근처 천마총 공원에서 오징어를 구워 팔기로 마음 먹었다.
친구는 더운 여름에 누가 뜨거운 오징어를 사먹겠냐고 말렸지만 간단한 도구로 팔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오징어 밖에 없었다.
군대 있을 때 목수 일을 한 경험이 도움이 되어 제법 그럴듯한 접이식 스탠드를 만들 수 있었다.
오후 4시쯤 오토바이 뒤에 접이식 스탠드와 오징어를 넣은 가방, 일회용 버너를 싣고 천마총으로 달려갔다.
본인이 생각해도 우스운데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이 코메디를 보는 듯 웃겼던 것 같다.
그러나 손님이 없어서 친구에게 오징어를 구어 주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는데
경비 아저씨가 와서 관광지에 노점상을 할 수 없다며 쫓아내는 것 이였다.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시내 번화가 한 가운데로 갔다.
그곳은 이미 쟁쟁한 노점상 선배들이 시내 깍두기들 눈치를 보며 생존을 위한 피나는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꺼벙한 대학생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가장 좋은 길목을 차지하니 기가찬 모양 이였다.
여기서도 쫓겨나면 여행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주위의 반응은 무관심 이였다.
며칠 하다가 말겠지 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곳의 분위기는 그리 살벌하지 않았다.
복사판 테이프를 파는 총각과도 이내 친해질 수 있었고, 아이스크림 파는 아주머니와도 농담을 주고 받게 되었다.
장난처럼 시작한 오징어 장사가 며칠이 지나자 장난이 아니게 되었다.
시내 한 복판에서 구워대는 오징어 냄새가 젊은 처녀 총각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아카데미 사거리라고 불리는 극장 번화가였다.
나도 모르게 절묘한 곳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 이였다.
친구들은 더운데 엉뚱한 짓을 하고있는 친구를 보려고 무리 지어서 찾아왔다.
접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무작정 구워대던 오징어 냄새가 사람들의 충동구매를 조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맥반석 돌이 좋다는 말을 듣고 개울가에서 잘생긴 돌멩이를 주워 다가 그 위에 오징어를 구었다.
그리고 고추장과 마요네즈를 작은 통에다 담아주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거리는 온통 오징어 냄새로 진동을 하게 되었고 내 별명도 "오징어 학생"이 되어 버렸다.
시내가 시끄러워 질수록 나의 수입도 상상을 훨씬 넘어섰다.
한학기 등록금을 내고, 어머니께 용돈도 드리고 친구들에게는 피자 탕수육을 사주며 인기관리까지 할 수 있었다.
그 해 여름은 평생을 두고도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을 가져다 주었다.
그때 배운 가장 값진 교훈은 너무도 평범하고 흔한 서양속담 이였다.
<font color=blue>"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font>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서 아무 생각 없이 졸고 있다가 사과한대 얻어맞고 "만유인력"을 발견하게 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고민하며, 끊임없이 물체의 인력에 대해 연구하고 사색을 하다가 사과가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안테나를 세워 놓아야 전파가 잡히는 것이다.
"하늘은 불쌍한 자를 돕는다"가 아니다.
"하늘은 배고프고 아픈 자를 돕는다"가 아니다.
불쌍하고 배고픈 자는 선하고 착한 사람이 도우면 되는 것이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다.
어릴 적에 집에서 개를 많이 키웠다.
개를 유난히 좋아해서 먹을 것이 생기면 항상 같이 나눠 먹었다.
그러다 개가 서너 마리로 늘어나면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나눠줘야 했다.
그럴 때면 가장 먹고 싶어하는 녀석에게 빵과 과자를 주었다.
눈을 흐리멍텅하게 해서 침을 질질 흘리며 낮잠이나 자는 녀석을 깨워서 먹을 것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먹을 것을 줘도 반가워 하지도 않고 달라고 하지도 않는 녀석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다.
하나 얻어 먹으려고 졸졸 따라다니고 꼬리를 흔들며 달라고 보채는 녀석에게 생선 빼다구라도 던져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열심히 먹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내가 먹는 것 보다 늘 개가 먹는 것이 더 많았다.
하나님이 있다면 아마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성경에 보면 "구하라 주실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라고 했다.
먼저는 인간이 구하고 두드려야 한다.
먼저는 스스로 돕고 노력해야 한다.
독일의 신학자 불트만 (Bultmann, Rudolf)은 "하나님의 할 일과 인간의 할 일이 따로 있다."고 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찾아야 하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우려 해야 한다.
그런 노력과 몸부림 속에 영감도 솟고 아이디어도 생겨나고, 행운과 기회도 따라오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것은 속담이라기보다 물리법칙에 가깝지 않을까.
盡人事待天命 (진인사대천명)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나서 천명을 기다려라.
- 고사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