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들만한 나이가 되니 어느날 문득 "철학적 사유"가 삶의 뿌리임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봤을 삶의 화두이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동서고금 많은 이들이 말해 왔다.
이러쿵 저러쿵~ 지금도 누군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행동에 선행하는 것은 인식이다.
시계를 기능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휴대폰이 등장한 이후에는 시계를 차지 않는다.
시계를 패션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스마트폰 시대지만 여전히 시계를 차고 있다.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삶을 어떻게 인식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 마다 이런 의문을 가져 본다.
그대의 삶이 얼마나 기구한지 모르겠으나 3살 난 그 아들이 당신 소유냐고...
아들은 내 것이고, 내가 죽으면 아들의 삶이 불행해 질 것 같으니 같이 죽어야 한다는 생각...
아들을 고귀한 생명인 "존재"로 인식하기 보다 , 내가 낳았기 때문에 내 것이라는 "소유"의 대상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전혀 죽을 의사가 없는 어린 아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날 무심코 책장을 바라보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꽃혀 있던 낡은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To habe or To be)"
책 정가 6000원... 십 수년도 더 된 책이지만 읽은 흔적이 없는 깨끗한 책이였다.
어렴풋이 그 책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날 서점에 들렀다가 제목이 마음이 들어 책을 샀다.
책을 사고 난후 머릿말을 읽어 보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몰라 목차만 보다 말았다..
그리고 십 수년이 지난 지금..
책장 넘기는 것이 아까워, 아끼면서 읽고 있다. 산삼을 캔 기분, 보물을 찾은 느낌이다.
에리히 프롬이 이야기 하는 삶의 양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소유의 양식", "존재의 양식"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인간들은 대부분 삶을 "소유의 양식"으로 인식한다.
현대인의 관심사는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보다 "나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이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느냐"는 지금의 영역이고,
"내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냐"는 시간속에 존재하는 과거와 미래의 영역이다.
삶을 살며 접하게 되는 모든 것들,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
현대인 대부분은 "소유의 양식"으로 인식한다. 나에게 있고 없음부터 따지려 든다.
예전에는 있었고 지금은 없고.. 지금은 없지만 미래를 위해 무언가 준비해야 하고..
그런데 삶을 "소유의 양식"으로 인식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돈을 모으려 자기 삶을 버린다. 돈을 확보하려 친구를 떠나 버린다.
더 많은 돈을 차지하려 피를 나눈 부모형제 마져도 내친다.
정작 그렇게 모은 돈을 움켜쥐고만 있지 어떻게 쓸 줄은 모른다.
평생 하고 싶은 것 못하고, 가고 싶은 곳 못가고 온갓 욕 다 들어가며 모은 돈을 그냥 움켜지고만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죽을 때까지 내꺼만 찾다가 빈 손으로 저 세상 가버린다. 참으로 안타까운 인생들이다.
그 무엇을 소유의 대상으로 인식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욕망과 집착과 번뇌가 생겨나게 된다.
아름다운 빛을 내는 보석을 보면 "색이 어찌 이리도 고울까" 하며 감탄하고 감상하면 된다.
동물에게 감성이 있다면 아마 그럴것이다..
사람도 예전엔 그랬다. 지금은 어떠한가..
저 보석을 가지지 못해 화가 나고, 잃어 버릴까 불안하고, 사라질까 걱정한다.
"소유"라는 인식 속에 온갓 생각이 번뇌가 되어 나를 공격하고 괴롭힌다.
석가모니가 어느날 설법을 하다 조용히 꽃을 들었다.
생뚱맞은 스승의 행동에 제자들은 어리둥절 했다. 서로 눈치를 보며 무슨 의미일까 고민했다.
어떤 의미지? 무슨 깊은 뜻이지?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걸까?? 오만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 제자 가섭(迦葉)만 웃었다. 이쁜 꽃을 보고 이뻐서 그냥 웃은 것이다.
꽃의 본질은 그냥 이쁜 것이다. 이쁜 꽃을 보면 그냥 웃으면 된다. 아니 웃어야 한다.
생각의 허상에 속으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사랑도 "소유의 양식"으로 인식하면 생각에 속게 된다.
곁에 없을 땐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화가 나고, 곁에 있으면 떠나 버릴까 불안하고, 행복할수록 이별이 찾아올까봐 미리 걱정한다.
"삶"의 본질은 "사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면 그냥 하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 할 수 있으면 그냥 사랑하면 된다.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으면 그냥 가면 된다.
인생은 "살다 가는 것"이지 "소유하다 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다.
관객은 주인공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주변인물과 인간관계가 어떠한지 관심없다.
어떻게 사는 지가 궁금하고, 어떤 사랑을 하는지가 보고 싶을 뿐이다.
주인공이 만들어 가는 스토리가 연극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돈, 학벌, 명예, 사랑, 지위, 권력, 명성, 직장, 외모...
이따위 것들이 있고 없음으로 인해 번뇌하지 마라.
인생의 본질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가 어떠 했는가이다..
많이 웃고, 즐거워 하고, 바빴고, 이것저것 했고, 그 모든 것이 행복 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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