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경제 논평2017. 2. 5. 14:44

지금은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태동 하는 시점이다.

인공지능, 로봇, 3D프린팅, 나노기술 등이 보편화 되면 생산성은 극도로 높아지게 된다.

인간의 노동력을 로봇과 기계가 대체하면 부가가치는 지금과 전혀 다른 곳에서 매겨 질수도 있다.

17세기 조선시대 양반이 "무한도전" 현상을 보면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광대에게 저렇게 많은 부와 명예를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호통 칠지도 모른다.  


지금 초등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갖게 될 직업의 70%는 지금은 존재 하지도 않은 직종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 되고 있고 혁명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은 존재 하지도 않았다.

10년, 20년 후의 미래는 지금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많은 빚을 지어 자본가의 노예 상태가 되는 것만 피하면 의식주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노후대책"이라고 하면 흔히 "연금 수령", "월세 수입" 같은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 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제적 준비도 중요 하지만 그것이 노후대책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자살률이 높다는 것이다.  

가장 높은 연령대는 70~79세 이고 그 다음이 60~69세 순이다.

그 만큼 노후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왜 자살을 선택 하는가!  

아픈데 고칠 수 없어 고통스러우면 스스로 삶을 놓아 버리는 것이다.

사람이 아픈 건 두 가지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죽고 싶을 만큼 몸이 아픈 노인도 많지만 죽고 싶을 만큼 마음이 아픈 노인도 많다. 

빵빵한 연금 , 따박 따박 나오는 월세 수입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노후대책의 핵심이다. 


 공자는 60세를 이순(耳順)이라 하였다. 

나이 60이 되고 보니 천지만물 이치를 깨닫게 되어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귀에 거슬리지 않고  듣는 대로 이해 되어 너그러이 헤아리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쉽지 않다. 

대게는 나이를 먹을수록 이순(耳順)은 커녕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듣는 말마다 귀에 거슬리고 생각은 딱딱하게 굳어  고루한 노인이 되곤 한다. 

몸은 어른을 지나 노인인데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마음 공부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성장하지 않는다.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인데 몸은 어쩌다 어른이 되어 삶의 궁극적 질문 앞에 부딧치면 당황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종착역이 가까워질수록  허무의 늪에 빠지고, 고독의 무게를 견뎌 내질 못한다.. 

물질의 욕망따위 조차 극복 하지 못해 집착의 그림자인 번뇌의 올무에 걸려 죽는 날까지 바둥 거리며 살다 가게 된다. 


억울하고, 원망하고, 후회하고, 고뇌하고, 좌절하고...  20대 , 30대에나 겪고 극복 했어야 할 성장통..

늙어서도 이런 감정에 휘둘리면 꼬장 꼬장하고  비루한 노인이 되는 것이다.

집의 평수를 늘리는 것보다 마음의 평수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100평 고대광실에 살면서도 마음의 평수는 한 평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좁은 곳에 살면 얼마나 답답한가.. 이 모든 게 마음의 공부를 하지 않아서이다.


  마음의 공부는 진리를 탐구하고 우주를 품으며 시공(時空)을 사유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인문학 열풍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인문학은 기껏해야 인간 현상에 관한 이야기다. 

공자가 우리 시대를 살았다면 궁극에 대해 질문 하는 물리학, 천문학부터 공부했을 것이다. 

 세상이 원자로 되어 있다는 것, 우주에 기원이 있다는 것 , 만물이 별의 잔해라는 것! 이 얼마나 놀랍고도 오묘한가....  길을 걸으며 풀 한 포기를 보고도 그냥 지나 갈 수 없고 큰 감동으로 다가 온다..

우주의 구조, 지구행성, 생명과 인간현상 ,모든 것의 시작과 끝, 이치와 패턴~

우주를 사유하면 큰 문제도 작게 보이고, 작은 것도 크게 보인다.. 그 마음은 세상을 품고도 남게 된다. 

이런 공부를 하면 마음의 공부는 저절로 된다. 

필자가 중점적으로 대비하는 노후대책도 바로 이것이다.  

아직은 갈길이 멀었지만 앞으로 십 수년 계속 공부하여 세상 만물의 이치가 다 이해 되고,  우주를 품을만큼 마음의 크기를 키우게 되면 내 비록 공자가 아니더라도 60 즈음에는 이순(耳順)의 경지를 얻게 되기를 꿈꿔 본다.

그런 마음을 갖추게 되면  남은 인생을 물 흐르듯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모든 행복의  시작은 건강한 몸이다. 

쇼펜하우어도 "행복의 90% 이상은 건강이다"고 말했다.

많은 자산을 긁어 모으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한 몸으로 노년을 보내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몸을 망치는 것 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건강은 행복의 초석과 같다. 

노후를 위해 모든 걸 다 준비하고도 건강을 잃어버리면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된다.

몸이 여기저기 조금씩 아프게 되면 무기력 해지고 , 짜증나고, 우울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암과 같은 큰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한 순간에 모든 게 무너진다..

개인연금을 꾸준히 납입 하듯 건강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

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경제 논평2017. 2. 5. 14:43

"이거 팔아 봐야 남는 것도 없어~"

알면서도 속아 주는 대표적인 거짓말이다. 

손해 보며 장사 하는 사람은 없다. 장사꾼이 이익을 추구하는 건 불변의 이치다. 

연금 상품을 판매 하는 회사 역시 나의 노후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걱정 한다. 

내가 받게 되는 연금은 내가 낸 보험금에서 사업비 빼고 남은 돈, 그 돈을 운영 해서 생긴 수익금으로 수령 기간만큼 돈을 잘게 쪼개 줄 뿐이다..

연금 상품에 따라 수령 기간도 5년, 10년, 혹은 죽을 때까지.. 다 다르다..

"연금 수령 기간이 길면 좋은 상품이고 짧으면 나쁜 상품인가?"

"죽을 때까지 연금을 주면 회사가 손해 보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장사꾼은 절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연금개시 시점에 내가 받게 될 연금이 대략 정해진다.

연금 총액 = (내가 납입한 원금 - 사업비) * 수익률..

 금리를 추종하는 상품이면 시장금리를 크게 상회 하지 않는다..

주식에 투자 하는 상품이면 수익률이 200%가 될 수도 있지만 납입 원금의 50%만 받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내가 받게 될 연금은 연금 수령 기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 좋고 나쁘고가 없다..

10년 수령하면 그 만큼 매월 수령하는 액수가 많고, 20년 수령 하면 그 만큼 액수가 적다..

죽을 때까지 받는 연금이면 평균수명 이상으로 살면 더 많이 받는 것이고, 평균 수명을 못 채우면 적게 받는것이다.

표준편차를 고려한 통계를 활용하기에 보험회사는 결코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연금은 내가 돈이 꼭 필요할 때 받는 게 중요하다.. (항상 필요하긴 하지만  ^^)

 어떤 사람은 은퇴후 5년 동안 집중해서 받는 게 좋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10년동안, 어떤 사람은 죽을 때 까지 받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사람 성향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다...

 나이 90, 100 되면 돈 쓸 일이 있을까 싶다... 

차라리 60세부터 70세까지 집중적으로 연금을 탈 수 있는 상품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연금상품 판매하면서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으니 얼마나 좋은 상품이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말은 전형적인 조삼모사다.


또 한가지 고민 해봐야 할 포인트는 돈의 가치는 시간과 비례하여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령 다음 달부터 연금 수령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1억을 몫돈으로 받는 것과 매월 50만원씩 20년 받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떤 것을  선택 할 것인가...

곰곰히 생각 하고 잘  따져봐야 한다...

 오늘의 100만원과 10년후의 100만원은 수치만 같을 뿐 그 가치는 다르다..

10년 전에는 점심 한 끼로 5천원이면 비싼 편이였지만,  지금은 5천원짜리 밥을 구경하기도 힘들다.

지금은 50만원이면 설렁탕 50 그릇을 살 수 있지만  20년후에는 20그릇도 못 살 수 있다.

이렇듯 연금으로 수령하면 사업을  하다가 혹은 사기를 당해서 몫돈을 날릴 수 있는 위험은 막아 주지만 인플레의 위험에 노출 되어 있다.. 

연금저축에 가입하면  소득공제 해택을 받아서 좋다는 사람이 있다.. 

물론 당장은 좋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소득공제 받는 연금상품은 연금 수령할 때 세금으로 토해 내야 한다...

 소득공제 혜택이 없는 상품은 연금 수령 시 비과세 혜택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개인연금은 내 돈을 회사가 대신 관리해 주는 것 임으로 당연히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나에게 돈이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써버릴지도 모르니까 믿음직스러운 그 누군가에게 돈을 맡겨 놨다가 내가 맡겨둔 그 돈을 일정금액만큼 쪼개서 돌려 받는 것일 뿐이다. 

지금과 같은 장기적 저금리 국면에서는  금리 추종형 개인연금은 그 수익률이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스스로 통제만 잘 할 수 있다면 굳이 수수료를 15%씩이나 주면서 남에게 맡길 필요가 없다.

스스로도 얼마든지 운영을 잘 할 수 있다.   절대 어렵지 않다. 

향후 경제 성장을 가장 많이 할 것 같은 나라의 시장추종 인덱스펀드에 장기적 계획으로 연금상품 납입 하듯이 적립식으로 납입하면 된다.

성장중인 나라의 주식시장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도 방향은 점진적인 우상향을 그린다.

따라서 매월 일정금액을 연금 보험 상품에 납입 하듯이  중국 시장 평균 추종 인덱스펀드에 20년동안 납입할 수 있다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성과를 볼 수 있다.


필자는 지금 개인연금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연금은 회사가 아무리 설계를 잘 하고 운영을 잘해도 그 효용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노후대책의 핵심은 은퇴 이후의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은퇴 후 "매월 얼마의 연금을 수령하게 되느냐".. 이건 매우 소극적이며 방어적인 노후대책이다.

점점 더 평균 수명이 늘어나기 때문에 은퇴하고도 30년은 더 살게 된다.  

은퇴 후 아무 일도 안 하고 30년동안 놀면서 살 준비를 젊었을 때 하는 것을 노후대책으로 생각하면 정말 큰 착각이다..

하고 싶은 것 안 해가며 돈을 아끼는 게 노후대책이 아니다.  

미래의 안락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지는 마시라.. 여행 가고 싶은 곳은 가고, 누리고 만낄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누려라..

지금 아껴 쓰고 그때가서 매월 따박 따박 연금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퇴 후에도 "가치 있는 그 무언가"를 창출 할 수 있는 능력을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생각지도 않고 있다가 그 날이 닥치면 그땐 진짜 불가능하다.

노후를 위해 준비 해야 할 것은 그저 돈이 아니다.

"삶의 의미 부여 할 수 있고, 보람을 만끽할 수 있으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그 무엇!  " 

나는 그것에 대해 준비하고 있는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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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경제 논평2017. 2. 5. 14:43

옛날 어느 임금이 신하들을 불러 모아 놓고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지혜를 모아 오라"는 명을 내렸다. 

신하들은 오랜 기간동안 동서고금 수 많은 지혜들을 모으고 정리하여 총 12권의 책으로 만들어 임금에게 가져 갔다.

그러나 임금은 "책이 너무 많구나!  한 권으로 줄여 오너라" 하고 다시 명 했다.

신하들은 12권의 책을 요약하고 또 요약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서 임금에게 가져갔다.

이번에도 임금은 "한 권도 너무 길다. 간단하게 한 줄로 압축 해서 가져 오너라"하고 다시 돌려 보냈다.

신하들은 열띤 토로을 거친 끝에 단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여 임금에게 가져 갔다. 

임금에게 전달된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말은 당연한 이치를 설명한 것으로 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불변의 법칙으로 통하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도 일맥상통 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 할 수 있어야 이치에 밝게 되고

이치에 밝아야 사리분별을 잘 할 수 있다.


기대 수명이 점점 늘어 나고 있다.

백세인생 이라는 노래도 있듯 요즘은 70은 기본이고 80에 가도 웬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60에 은퇴 하고 나면 인생 3분의 1이 덜컹 남아 있게 된다. 

인생 3분의 1이 대책이 없기에 누구든 노후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믿을 수 없고, 퇴직금은 쥐꼬리만하거나 있으면 다행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권에서 판매하는 개인연금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많고, 연금 상품을 팔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종류가 너무 많고 설명을 들어 보면 뭐가 뭔 소린지 모르겠고 해깔린다.

연금저축, 연금보험, 연금펀드, 변액연금보험......

설명 듣는 사람도 혼란스럽지만 설명하는 사람도 해깔린다.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이 사기고,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이 과학이다.  

복잡 할 때는 명료한 것부터 생각하면 된다.


연금 상품에 가입 했다고 가정해 보자.

메트라이프? 삼성생명? 푸르덴션? 회사는 상관 없다..

어쨌든 나는 현금을 납입하고 회사는 내가 납입한 현금을 운영 해서 그 수익금으로 연금을 준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연금 상품을 팔아 먹는 회사는 누구 돈으로 사업한다?

그렇다. 내가 넣은 돈으로 사업한다. 

고객이 납입한 돈으로 보험 회사 직원 월급 주고, 판매한 사람 수당 주고,건물 임대료 내고, 임원들 골프치고,주주들 배당 주고 다 한다.

누구 돈으로? 내가 낸 보험금에서 일부 돈을 때서 ...

보험 회사는 좋은 일 하는 산타가 아니라 돈 버는 장사꾼이다.  

당연한 이치지만 내가 보험료를 납입하면 무조건 사업비를 땐다.. 적게 때는 게 아니라  엄청 많이 땐다..  

매월 10만원 납입하면 최소 15,000원 정도는 땐다. 

납입 기간이 길면 사업비가 조금 줄어든긴 하지만 10년 납입하면 대략 15% 정도 사업비로 나간다..

수수료 15%면 엄청난 거다.


그렇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개인 연금도 "에너지보존의 법칙"이 통한다. 남의 돈으로 내 연금을 줄리가 없다.. 

내가 받게 될 연금은 내가 총 납입한 원금에서 사업비를 땐 나머지 돈을 운영해서 생긴 그 수익을 가지고 연금으로 준다. 

내가 넣은 원금을 운영해서 생긴 수익 이상으로 줄까? 그럴리가 있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납입한 원금이 낸 수익을 매월 쪼개서 줄 뿐이다.


연금 수령 기간이 5년이면 5년 만큼 쪼개서 주고, 10년이면 10년 만큼 쪼개서 주고, 죽을 때 까지면 보험회사는 평균 수명을 따져서 그만큼 쪼개서 준다.

5년 수령 하는 상품이 나쁘고 죽을때까지 수령하는 사람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조삼모사다.. 

연금을 수령하는 기간이 짧으면 매월 수령하는 금액이 많아지고 수령 기간이 길면 연금액이 작다..

어쨌거나 내가 납입한 원금을 운영해서 생긴 수익 범위 내에서 준다..


그렇다면 보험회사는 내 돈을 어디에 운영할까? 뻔하다..  

금리상품, 주식, 채권 등등등..

보험 회사는 기가 막히게 운영을 잘 한다?

그럴리가 있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수익률은 시장평균을 크게 넘지 못한다..   

금리를 추종하는 연금은 시중금리,  주식을 추종하는 연금은 주식시장평균에 준 하는 수익을 낼 뿐이다...

연금저축하면서 소득공제 해서 좋다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중에 연금 수령할 때 정부에서 따박따박 세금 땐다..

에이씨.. 그럼 난 비과세 상품 가입할래..  그것은 소득공제가 안 된다..  왜냐.. 세상에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럴거면 왜 비싼 수수료 내고 개인연금 가입하지?

그렇다.. 스스로 통제만 잘 할 수 있다면  굳이 비싼 수수료 내고 가입할 필요는 없다..

정말 그렇다고?  보험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별의 별 반박을 다 하겠지만 정말 그렇다..



다음글에서 계속..

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4:41

나이와 더불어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와 더불어 시들어 가는 사람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성숙하고 깊이가 있어 삶의 멋을 더해 가기도 하지만 추한 자아로 늙어 가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른스러워지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나이를 먹고도 어린아이와 같은 어른도 있다. 

이는 성품의 문제도 , 성격의 문제도, 천성의 문제도 아니다.

자아의 성장이 멈추면 서서히 어린아이와 같은 어른이 되고 급기야  꼬장 꼬장하고 꽉 막힌 꼰데가 된다.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은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다. 

매일 매일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인식의 고도를 넓혀야 한다.


배움에 대한 열정,  앎에 대한 갈망, 진리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 

이는 "종교적 의미의 진리"라기 보다  진정한 이치, true 그 자체다.

인간현상,지구행성, 그리고 우주


무지의 벽에 부딧칠때마다 절망과 함께 희열을 느낀다. 

"이런 게 있었구나! " , " 여지껏 이걸 모르고 살았단 말인가!", "이래서 그런 거였구나.."

이런 감탄사를 자주 경험 할수록 나는 성장 하고 있는 것이다.


인식의 지평을 점핑 시켜 준 책은 삶의 금은보화다.

같은 무게의 금붙이 보다 가치가 있다. 

그런 책은 많아야 일 년에 한 두 권 정도 발굴 된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 유발 하리리의 "사피엔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문명의 붕괴" 이런 류의 책은 처음 접할 때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얼마 전, 2년 전에 산 후 책장에 처 박아 놨다가 이제서야 읽은 책이 있다. 

크리스 임피의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대어를 낚은 기분이다..  

인간의 죽음 부터, 문명의 멸망, 생명체의 종말, 지구의 최후, 우주의 끝을 사유 하게 해준다..


물론 이런 책은 내 금융 자산을 늘려 주지 않는다. 통장 계좌의 수치를 높혀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식의 지평을 높혀 준다.. 

높은 산을 올랐을 때의 기분이랄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전망대에서 숲을 내려다 보는 듯한 기분이다. 뭔가 탁 트이고 시원하다.


왜 굳이 땀을 뻘뻘 흘리고 산에 가는가! 

설명이 안 된다.. 내가 가보기 전까지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는 책도 그와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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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4:39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경주가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다음날 토요일, 막내 동생 결혼을 앞 두고 경주에서 상견례가 예정 되어 있었습니다. 

전날.. "기차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 고심하다  책꽃이에서 하나를 고르기로 했습니다..

 한 책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님웨일즈의 "아리랑"..

최근 JTBC의 "차이나는 도올"이란 프로에서  도올 선생이 소개 했던 책 이기도 합니다..


 저의 서제에는 제법 많은 책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다 읽은 책이지만 그 중에는 읽다 말았거나 읽지 않은 책도 여럿 있습니다..

님웨일즈의 "아리랑"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늘 그자리에 있었지만 여태 읽지 않은 책입니다..

출판연도를 보니 1991년.. 25년의 세월을 말해주듯 책이 누렇게 변해 있었습니다..   

책 첫 페이지를 보니 이번에 결혼하는 막내 동생의 사인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오래전에 동생에게 이 책을 빌리고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동생에게 이 책 내용이 기억나냐고 물었더니 책을 샀던 것 조차 기억 하지 못하고 있더군요..

아마도 러브스토리를 기대하고 샀는데  독립운동가 이야기여서 읽다 만 모양입니다.


 이 책의 존재는 오래전 부터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후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형..   님웨일즈가 쓴  아리랑 이라는 책 읽어 보셨어요? 꼭 보세요.. 정말 강추예요.. "

그땐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아리랑.." 제목을 보아 하니  신파극의 사랑 이야기 같았습니다.

어쨋든..   우여곡절을 거쳐, 내 책 꽃이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아리랑"을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경주 가는  기차길에서..

벚꽃이 만발한 4월의 경주에서..

어느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 김산의 이야기.. 

"아리랑"을  읽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벅차 오르는 가슴을 주체 할 수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안약을 넣었습니다.


패망한 식민 조선의 지식인 청년 .. 김산

님 웨일즈와  우연한 만남이 없었다면 아무도 몰랐을 그의 삶..

하루의 대부분을 나의 안위를 걱정하고, 나의 미래를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 아니 나의 모습과 어찌 이리 다른지요..


자신의 몸을 태워가며 어두운 세상을 밝히려는 촛불과도 같은 삶..

한 때는 이땅에 그런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너무도 생소합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 하는 독립투사들을 우리는 존경 했습니다..

군부 독제 시절,  민주화 운동하는 젊은이들을 우리는 동경 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자유..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가 그런 사람들을 바보로 취급 합니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나?"


나 하나의 안락한 삶을 위해 청춘을 불사지르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생각치 않고 오직 조국을 위해, 타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운 김산의 삶..


님웨일즈의 "아리랑"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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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4:33

19세기 미국의 어떤 유명한 통계학자가 침례교 목사의 수가 증가하는 만큼 알콜 중독자의 수도 증가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목사가 증가하고 알콜 중독자도 증가 하는 "상관관계"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

번민이 있을 때 어떤 이는 종교로 위안을 받고, 어떤 이는 술로 위안을 받는다.

 "종교와 술은 위안을 준다"는 사실과 "목사와 알콜 중독자의 수가 동시에 증가 한다"는 사실을 잘 엮으면

"이 세상이 점점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결론에 도달 할 수 있다. 

 꾀 그렇듯 해 보이지만  정확한 인과관계는 증명할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19세기 미국은 인구가 계속 증가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970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모종의 실험을 하였다. 

4살 된 꼬마들에게 마시멜로를 하나 준다. 

아이에게 당장 먹으면 하나로 끝나지만,  참았다가 15분 후에 먹으면 하나를 더 준다고 제안했다. 

 실험결과 아이의 반응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어떤 아이는 당장 먹어 치우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15분을 참았다가 보상을 받았다.

 그후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관찰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만족을 지연하는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에 비해 SAT점수가 높게 나왔다.

그후 추적 조사를 통해 인내하지 못한 아이들은 비만, 약물중독,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를 가진 어른으로 살고 있는데 반해 인내력을 발휘한 아이들은 성공한 중년의 삶을 살고 있음을 확인 하게 되었다.

 이를 근거로 만족을 지연 시키는 능력이  훌륭한 성취의 원인 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에도 소개된 내용으로 동기부여가, 자기계발 강사들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하지만 "만족을 지연할 수 있는 것"과  "성취도가 높은 것"의 상관관계를 근거로, 

"만족을 지연 할 수 있었기에 성취 할 수 있었다"는 인과관계로 단정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사실 마시멜로 실험에 참여했던 어린아이는 대부분 스탠포드 부속 유치원 소속이였다. 

부모의 상당수는 스탠포드 대학원생이였고 아이들 대부분은 중산층 이상의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만약 실험 대상이 저소득층 지역의 형제가 많은 가정의 아이들이였다면 실험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을지도 모른다. 

형제가 많고 부유하지 않아 늘 먹을 것을 경쟁 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라면 15분후에 하나 더 먹을 수 있다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당장 하나를 확실히 보장 받는 것이 보다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또한 15분을 참으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준다는 것을 믿으려면 평소 가정 환경이 안정적이며 부모 자식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부모 자식간에 신뢰가 두터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보다 보다 더 좋은 양질의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을 확률이 높다. 

아이의 만족 지연 능력보다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랄 수 있었던 환경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했을 수도 있다.

상관관계가 있다고 반드시 필연적인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유를 먹인 아이가 우유를 먹인 아이보다 지능, 건강 등 여러 면에서 좋은 이유가 반드시 모유의 성분 때문만은 아니다. 

엄마의 호흡을 느끼며 받는 안점감 , 엄마 눈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뇌의 자극이 아이의 두뇌 발달과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살다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부모와 자식 ,사랑하는 연인, 친구와 동료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인연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삶의 옷감을 짜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며 주의 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은 몇 마디 말과 몇 번의 상황을 조립하여 판단하고 규정해 버리는 것이다.


몇 마디 말과 사건 몇 개를 연결하여 공식과도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말을 했었고, 저런 행동을 했으니 그는 그런 사람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맞을 때도 있지만 오해와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사건을 한 줄로 세워 나열을 하면 1차원이 된다.

이렇게도 연결 하고 저렇게도 연결 하여 생각 해보면 2차원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객관화 하여 위에서 밑을 내려다 보면 축이 하나 더 생겨 3차원이 된다.

현재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축을 하나 추가하면 4차원이 된다.


어떤 현상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을 바라 볼 때, 부동산 시장을 바라 볼 때, 경제현상, 정치현상, 사회 현상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사건만 연결하여 결론을 내리면 그 생각은 1차원이다...

호재, 악재, 이벤트를 보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판 전체를 보는 사람이 있다.

판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판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알려는 사람이 있다.

판을 움직이는 자만 생각하기 보다 판이 움직여 온 역사의 큰 그림을 보려는 사람도 있다. 

"나는 몇 차원의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일까"

봄이 왔다. 화두로 삼고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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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세계2017. 2. 5. 14:07



1000년의 시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 왔다.

 여행지는 십자군 전쟁이 휩쓸던 중세 유럽과 중동.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 세 권과 "십자군 전쟁", "탬플기사단" 관련 다큐 몇 편, 그리고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킹덤오븐헤븐"도 여러 번 봤다.


많은 남자들을 만났다.  

불운의 예루살렘왕 보두앵 4세, 터프가이 리쳐드왕, 잰틀맨 살라딘, 억울한 누명을 쓰고 화형에 처해진 최후의 탬플기사단장..

"신이 그것을 바리신다."는 기치 아래 쳐들어 갔고,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막아섰다.

 신의 이름으로 치뤘던 200년간의 십자군 전쟁...

신의 그림자는 찾지 못 했고 인간의 민낯만 발견했다.


십자군에 참여 하면 모든 죄를 사해주고 천국행 티켓을 보장 한다던 교황.

교황은 정말  자신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고 믿었을까?


신의 이름으로 수 많은 양민을 학살했던 십자군.

젖 먹이 어린아이와 부녀자를 도륙하면서 정말 천국 갈 수 있다고 생각 했을까?


8차까지 이어진 십자군 전쟁에서 1차 빼고는 별 성과 없이 끝났다.

약탈만 일삼다 중도에 격퇴 되어 돌아 오기도 하고, 같은 기독교 국가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기도 하고 ,

본토에서 반란이 일어나 싸우다 말고 돌아 가기도 하고,  쫄병부터 왕까지  모조리 포로로 잡혀 거액의 몸 값을 지불하고 풀려 나기도 했다..


음모, 모략, 배신, 이권 싸움, 돌발상황..  

신의 이름을 빌리긴 했지만 인간사에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전쟁과 조금도 다를바 없었다..


탬플기사단의 최후는 긴 여운으로 남았다..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도자이자 기사의 길을 걸었던 탬플기사단..

성스러운 일을 하는 탬플기사단을 도우면 죄가 사해 진다고 믿었던 유럽인의 후원에 힘입어  엄청난 부동산과 재산을 가진 집단으로 성장했다..


프랑스왕이 이슬람군의 포로로 잡혔을 때 거액의 몸 값을 지불해야 했다..

왕비 목걸이까지 팔아 돈을 마련했지만 돈이 모자랐다..

어쩔수 없이  탬플기사단에 돈을 빌려  겨우 풀려났다..   그로인해 프랑스 왕가는 탬플기사단에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다..

물론 갚지 않았다.. 아니, 갚을 필요가 없었다.  

십자군 전쟁이 끝나고  탬플기사단이 본국 프랑스로 돌아오자 그들을 이단으로 몰아 모조리 잡아 죽이고 탬플기사단의 재산을 모조리 몰수 했다.


껍질을 벚기고 불에 지지고 온갖 잔혹한 고문을 자행하여 127가지 죄목을 자백 받았다..

십자가에 침을 뱉었고, 이슬람군과 내통했으며, 동성애를 일삼았고 악마를 숭배했다고 자백했다..


 고문에 못 이겨 악마를 숭배 했다고 자백하고 산 채로 불에 타 죽은  마지막 탬프기사단장 "자크 드 몰레이" 

불에 타죽어 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누가 말했던가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신을 만들었다."

신을 믿는 사람이 있고, 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신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은, 신을 믿는 사람을 이용하려는 사람이다.


 신의 자리는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이념으로 대체 되었다.

충성, 애국, 민족... 물론 여전히 신의 이름이 통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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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4:00

 경주는 명절 때와 어머니 생신 때, 그러니까 1년에 서 너번 꼴로 갑니다.

가방하나 둘러 매고 연고도 없는 서울로 온지 벌써 십 수 년이 지났네요.

가끔 고향에 내려 가면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없던 도로가 생기고, 멋진 공원도 하나 둘씩 들어서고, KTX가 개통 된 이후로는 팬션, 캠핑장도 늘어 났고 

휴가철때면 경주 시내가 부쩍 붐빕니다.


 경주 갈 때마다 꼭 들리는 곳이 있습니다. 

"제일서점"이라는 조그만 서점입니다.

경주의 "교보문고" 같은 곳인데 그리 크지 않지만 경주에서 가장 큰 서점 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저에게 추억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시간 날 때마다 종종 들리곤 했습니다. 

"코스모스", "로마인 이야기"도 이곳에서 샀고, "이정선의 기타교실"시리즈도 이곳에서 샀습니다. 

책장에 꽃혀 있는 책 중 20년 넘은 책은 거의 "제일서점"에서 샀을 듯 합니다.

그래서 경주 제일서점은 저의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와 같은 곳 입니다. 


이번 설날에도 혼자 제일 서점을 들렀습니다. 언제나처럼  한산 했습니다.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 거렸는데 언제부턴가 인적이 드문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1층은 주로 참고서, 어린이 책, 실용도서가 있고 2층은 역사,과학 같은 인문.사회.과학 코너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코너가 있는 2층에 가 보았습니다.

조명이 몇 개는 꺼져 있어 어둡다는 느낌 마져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손님은 저 혼자 뿐 이였습니다. 책꽃이에 책이 듬성 듬성 꽃혀 있고, 그마져도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2층은 환한 불빛에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 거렸는데 지금은 폐광촌 같은 느낌마져 들었습니다. 

1층은 참고서를 파는 코너에 학생 몇명이 서성거리고 있었고, 어린이 책 코너에는 엄마 손 잡고 온 꼬맹이 몇 명이 전부였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겠지요..

오직 책에서만 정보를 습득 하던 시대에서 책을 굳이 사지 않아도 될만큼 인터넷에 컨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로 변했습니다.

클릭 몇 번이면 저렴한 가격에 책을 집까지 배달 해주니 서점에 굳이 갈 필요가 없어 졌습니다. 

서울의 몇몇 대형 서점을 제외 하고는 동네 서점들은 이미 오래전에 경쟁력을 상실 했습니다.  

비디오 대여점이 모두 폐업 했듯이 동네 서점도 머지않아 폐업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거리, 그 벤취, 그 카페...

추억이 깃든 곳을  찾아가면 느끼는 애잔함 이랄까요... 

 가슴이 먹먹 했습니다. 

곧 헤어짐을 예감한 연인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요..

서점을 나오면서 책을 하나 샀습니다. 아무거나 눈에 잡히는 것을 집어서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을 나서면서 속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서점아..  다음 올 때까지 잘 지내고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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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3:58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이 전원 벌금형에 처해 졌다.

세브란스 병원과 병무청에서 공식적으로 확인 시켜주고,1심, 2심 모두 져도 여전히 병력 비리를 주장 하고 있다. 


이런 류의 일은  흔하다.

비슷한 예가 가수 타블로가 학력을 위조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타진요 사건"..   

스텐퍼드 대학에서 공문으로 졸업생이 맞다고 인정하고 ,  검찰에서 공식적으로 확인 시켜줘도 끝까지 고집피우다 처벌까지 받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타블로가 학력을 위조한 것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람은 대게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타블로 학력위조 의혹 제기자들은 타블로가 학력위조를 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박원순 시장 아들 병력비리 의혹 제기자들은 병력비리가 사실이길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이런 심리가 깔려 있다. 

"딴따라 가수 나부랭이가 무려 스탠퍼드를 나오다니 기분 나쁘게.. " 

"저잣 거리에서 굴러먹던 변호사 주제에 무려 서울시장을 하다니 기분 나쁘게.."


 의식 가운데는 현재의식이 있고, 잠재의식이 있다.

현재의식이 물 위에 떠 있는 빙산이라면, 잠재의식은 물 밑에 잠긴 빙산이다.

나훈아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가 왜 이러는 지 몰라~"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는 것은 자신의 잠재의식을 못 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샹커 베단텀의 "히든브레인"이라는 책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소개 되어 있다.


자신의 잠재의식을 읽지 못하면 잠재의식에 휘둘리게 된다.

이성적 판단력이 흐려지고 왜곡된 프레임에 갇혀 소통이 불가능 할 정도로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기도 한다.


 영생을 주장하던 교주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교주가 가짜일 때 내 인생 모두가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알지 못하지만 분명 신의 심오한 뜻이 있다거나, 그분은 억울한 누명을 쓰신 어린양 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리고 믿고 싶은 것을 계속 믿는 것이다.

"맞다, 틀리다, 옳다,그르다, 좋다, 나쁘다" 살아가면서 수 많은 가치판단과 도덕판단을 하게 된다.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맞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 무엇이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에 의해 왜곡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 주고 돌려 받지 못했다면 이 사건에는 돈을 빌려준 나와 돈을 빌린 상대방이 있다. 

이때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돈을 빌려준 나의 어리석은 행위와

상환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돈을 빌려간 상대의 나쁜 행위가 공존한다. 


대게 이런 경우 나의 어리석은 행위는 축소하려 하고 상대의 나쁜 행위를 부풀리려 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심사 숙고 하면서 내리는 결론은 나는 피해자, 상대는 가해자라는 결론이다..

나는 상대의 처지가 안타까워 돈을 빌려 줄만큼 착한데 상대는 그런 나의 착한 마음을 이용할만큼 나빴다. 

생각을 거듭하다 결국 "그 녀석은 처음부터 못 갚을 것을 알면서, 아예 작정을 하고 계획적으로 돈을 빌려 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잠재의식이 이런 결과를 유도 하는 이유는 상대가 그런 사람이여야 나의 어리석음이 감춰지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빈약할 때 잠재의식에 의해 상황을 왜곡되게 해석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유독 배려가 적고, 이해심이 부족 하고, 분노와 화를 못 참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인격이 부족해서도,  성격이 나빠서도, 천성이 원래 그래서도 아니다.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세서 그런게 아니라 자존감이 약해서 그런 것이다.


나의 작은 어리석었음도 용납 못할 정도로 자존감이 바닥나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라는 창고가 넉넉해야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하고, 배려도 할 수 있고 , 이해 하려 노력하게 된다. 

자존감이 바닥나 있으면 상대의 마이너스로 나의 플러스를 만들려 한다.


 비난 하고, 힐난 하고 , 악담 하고, 트집 잡고, 저주 하고, 모욕 하고...

이런 류의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 하는 사람이 있고, 단 한 번도 그런류의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성격도 아니고, 천성도 아니고, 인격의 문제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비춰지지만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자존감이 바닥날 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자존감은 내가 노력하고 잘났을 때 채워지는 게 아니다.

좋은 직장 다닌다고, 영어 잘 한다고, 누구에게 인정 받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은 내가 귀한 사람임을 깨달을 때 순식간에 100% 충전 된다.


당신은 이미 귀한 사람이다. 

이 우주가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그리고 또 이 우주가 사라질때까지 그대는 단 하나의 유일한 존재이다.

똑같은 모습도 없을 것이고 똑같은 사연도 없을 것이다.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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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0:43

설 연휴를 즈음하여 심한 감기에 걸렸다. 

약을 먹었더니 열은 다음 날 내렸다. 하지만  편도선이 계속 부어 있어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막대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  설날에 내려 오냐고 물어 본다.

짧게 대답을 한다. "응"  

"목소리가 왜 그렇냐"며 수화기 너머 들리는 요란한 리엑션~ 

하기야. 내가 들어도 내 목소리가 매우 낯설다. 

"내 목소리를 엄마에게 말하지 말아라."

이순신이 이런 심정이였을까..


수화기 너머 웃는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도 감기 걸리셨고, 똑같은 말씀을 하셨단다. 

아들이 걱정 한다고 엄마가 감기 걸렸다는 사실을 오빠에게 말 하지 말라고 하셨단다.


어릴적에는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제일 먼저 달려갔다. 

동네 형이 괴렵혔을 때..  충치가 생겨 이빨이 아플 때.. 누나랑 싸웠을 때..

내가 힘들고 어려운 걸 엄마가 알아주면 위로가 되었다.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만약 내가 죽으면 엄마가 많이 슬퍼 하시겠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죽을 때 예상 되는 엄마의 반응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귀한 존재임을 확인 받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힘든 일이 있어도 엄마에게 말 하지 않는 나를 자각하게 되었다.

엄마 품에서 벗어난 것이다. 

처음으로 세상에 홀로 던져진 듯한 느낌이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 왔다..


 홀로서기가 익숙해져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누군가 내가 힘든 걸 알아줘야 위로가 되고, 

내가 아픈 걸 알아줘야 치유가 된다면 홀로서기의 훈련이 필요하다. 

언제나 누구에게 기대야만 설 수 있다면 외발 서기 마냥 삶은 늘 위태롭다.


감기로 목이 쉰 아들과 감기로 목이 쉰 엄마가 만났다..

감기 걸리고 감기 조심하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 민망한지 엄마와 아들은 서로를 보고 웃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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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생2017. 2. 5. 10:42

만약 5분 앞을 내다 보는 능력이 있다면 큰 부자가 되는 건 식은죽 먹기다. 

5분 후의 주식 시세를 알면 합법적으로 돈을 긁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초능력자가 있을 리 없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쉬운대로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만 알고 있어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돌이켜 보면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가 무수히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감 하지 못 하는 이유는 시간의 연속선 상에 살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단돈 1000원도 아쉽던 학창 시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당시 나로서는 어머어마한 거금을 주고 30권짜리 세계대백과사전을 샀다. 

 책꽃이 한 가운데 떡 하니 자리잡은 백과사전을 바라 볼 때면 늘 뿌듯했다. 

하지만 사용법은 꾀나 복잡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가나다 순으로 나열된 백과사전을 뒤적거려야 했다.  여기 저기 읽다 보면  모르는 것이 또 나온다.  

그렇게 이것 저것 연관된 것까지 찾다 보면 주어진 시간에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수첩만한 그 무엇 속에 세계백과사전을 종류별로  넣고 다닌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 어떤 것이든 즉각 알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듣고 싶은 노래도 즉각 들을 수 있고, 신문도 종류별로 다 들어가 있다.

누군가 20년 동안 잠들다 오늘 깨어 났다면 또다시  기절해 쓰러질지도 모른다. .

앞으로 10년 그리고 또다시 20년 후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위에서 말한 예는 비교도 안 될만큼  천지개벽이 일어 날 확률이 99% 이상이다.

3차 세계대전으로 현대 문명이 붕괴되지 않은 한 말이다..

지식은 축적되기 때문에 시간에 비례하여 과학기술은 발전하게 된다. 

그로인해 생산성은 점점 좋아지게 된다. 

옛날은 100명중에 70명이 생산과 관련된 일을 해야 100명이 먹고 살았다. 

그런데 지식이 쌓이면서 100명중에 50명이 생산과 관련된 일을 하고 나머지 50명은 생산과 관련이 없는 일에 종사해도  먹고 살수 있게 되었다. 

생산성이 향상 되면 생산에 참여하지 않은 잉여 인구가   상업,무역, 의료, 교육, 법률 같은  곳에서 또다른 부가가치를 만든다..


앞으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등장하게 된다. 

현재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한 부분에 로봇이 투입될 것이다. 이는 불보듯 뻔한 사실이다. 

생산 현장은 물론이고, 자동차 운전, 군인, 심지어 지금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법률, 심리상담까지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에게 뺏기게 될지도 모른다. 

노조도 결성하지 않고, 야근수당을 줄 필요도 없고,  365일 풀 가동을 시켜도 아무 말 없이 일하는 로봇을 인간은 이길 수 없다. 


100명중에 20명만 투입되도   생산은 차질없이 이뤄지는 세상이 분명히 도래한다..  

지금은 전문분야라고 생각하는 서비스업종의 상당부분까지 로봇, 인공지능에 뺏기게 되면  분명 새로운 곳,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전혀 새로운 곳에서  부가가치가 생겨난다...  

 앞으로 탄소 배출권이 거래 되는 세상이 온다고 하는데 지금은  당췌 무슨 소린지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 이를 당연시 여기는 시대가 가까운 미래에 올지도 모른다. 

요즘 tv를 보면 연예인 몇명 어울려 다니면서  요리 만들어 먹으면서 웃고 떠들고 노는 것이 대세를 이룬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벌어가고 있다. 옛날 사람들이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재화를 생산해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시대에서  서비스를 창출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시대로 변모 했다. 

앞으로는 재화를 생산하고,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을 인간에서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 하게 되면     

인간의 일자리를 로봇과 기계가 뺏아  갈테지만  새로운 곳에 시장이 생긴다.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며, 그곳이 어딘가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공무원 공부에 목숨 걸고 있다고 하는데 답답한 노릇이다. 

컨텐츠를 만들어 내고 유통시키는 기술을 익히면 미래에 좋은 기회가  오리라 생각된다.  

반드시 양질의 컨텐츠일 필요는 없다. 컨텐츠의 내용과 트레픽과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 그렇다고 닥치고 트레픽 장사 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컨텐츠지만 재미있는 것도 컨텐츠다. 

재밌는 것도 컨텐츠지만 공감을 유발하는 것도 컨텐츠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지인중에 블로그 운영하면서 한 달에 800만원 버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제공하는 컨텐츠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재미 있게 노는 모습을 담아 둔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아서 방문자가 늘어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동영상에 담아 재미있는 맨트를 넣어서 유튜브에 올려 놓았는데  광고수익이 웬만한 월급쟁이 월급보다 많은 사람도 있다. 

남들 다하는 스펙을 쌓는데 목숨 걸지 말고  ,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세상에 어필 할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드는 것이 미래를 위해 훨씬 좋은 투자라 생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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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0:40

며칠 전 사업하는 후배와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고등학교 동문이기도 하고 반지하 자취방에서 3년 동안 동고동락 하던 사이라 친동생처럼 정이 가는 친구다.. 

코드가 잘 맞아서 일까.  그 녀석과 이야기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처음에는 먹고 사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시작 하다가도 대화가 무르익으면 옆 길로 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 날 옆길로 샌 대화의 주제는 슬픔이였다. 

슬프다는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왜 슬퍼 하는가, 언제 슬퍼 하는가..   

동물도 슬픔을 느낄까~ 

로봇을 만들면 슬픔의 감정을 어떻게 세팅 할까~  혹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슬픔의 효용은 무엇이였을까~  

슬픔은 극복의 대상인가,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등등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슬픔을 다음과 같이 정의 했다.

"슬픔이란 보다 완전한 것에서 불완전한 것으로 이행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다."

물론 기쁨의 정의는 그 반대이다. 

음미 할수록 간결하고 명쾌한 해석인 것 같다.

 인간의 감정에 대해 스피노자 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하는 철학자는 아직 알지 못한다. 

불완전? incomplete, imperfect.

이행? 移行, 다른 상태로 옮아감.


 슬픔이란 보다 완전했던 것이 보다 불완전한 것으로 바뀌어 가는 상태를 인지 했을 때 켜지는 감정의 스위치다.. 

활짝 핀 꽃이 점점 시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 웬지 모르게 슬퍼진다. 

매일 보는 거울 속에서 점점 늙어 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 슬퍼진다. 

만남 보다 헤어짐이 보다 불완전한 것으로 인식하면 슬픔이 온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으면 말 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들지만 , 싫어하던 직장 상사가 퇴직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같이 있을 때 나의 존재가 보다 완전하다고 인식되면 기쁨이 오지만, 헤어지면 나의 존재가 보다 불완전하다고 인식되면 슬픔이 온다.

그렇다. 슬픔이란 보다 완전함을 지향하라는 유전자의 명령이다. 

슬퍼하는 것은 나쁜 것도  못난 것도 아니다. 

완전함에서 불완전함으로 추락 했다고만 생각하면 그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를 보면 의미 있는 가사가 나온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이 노래는 슬픔을 승화하는 방법을 노래하고 있다. 

꽃이 지는 모습이 슬프다면 만개 했던 꽃이 그 만큼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의 고뇌와도 일맥상통 하는 화두~ 

"불완전 해짐을  인지 할 것인가, 완전 했음을 상기 할 것인가."

이 또한 선택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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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생2017. 2. 5. 10:35

식사 후, 

적극적으로 밥 값을 계산 하는 이는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돈보다.. 관계를 더, 중히 생각하기 때문" 이고... 


일할 때, 

주도적으로 하는 이는.. 

바보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다툰 후, 

먼저 사과하는 이는.. 

잘못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당신을 아끼기 때문입니다..!! 


늘, 

나를 도와주려는 이는.. 

빚진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 이며... 


늘.. 

카톡이나, 안부를 보내주는 이는 

한가하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 늘, 당신을 두고 있기 때문" 입니다..! 


오늘 아침 직장동료가 인터넷에서 떠도는 좋은 글이라며  보내주더군요.. 

나는 그 누군가에게 그 어떤  사람일까.. 혹은 어떤 사람이였을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욕심이 나더군요.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였다. 

그런 사람이 나 라는 사람이면 참 좋을텐데 .. 

하지만 그 누군가에는 전혀 그렇치 않은 사람이겠지요. 


나도 모르는 나. 

그러한 나도 나 이기에 나는 언제나 겸손해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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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0:34

오늘  무엇을 하였는가!

매일 무엇을 하는가!

거울에  나의 얼굴이 비치듯,매일 무언가 하는 나의 모습 속에 나의 삶이 비친다.


매일 즐거운 일만 있을리 없고, 매일 슬픈 일만 생길리 없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매사에 밝은 면을 먼저 보려 하면  낙천적인 사람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매사에 어두운 면을 먼저 보게 되면  비관적인 사람이다.


매일 일이 잘 풀릴리 없고, 하는 일마다 꼬일리도 없다.

어쨌거나  매사에 잘 될리라 기대하면  긍정적인 사람이고, 

어쨌거나 안 될거라 걱정하면  부정적인 사람이다.


보통은 그 둘 사이를 오간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슬퍼한다.

잘 될 것 같으면 기대하고, 못 될 것 같으면  걱정한다.

그런데 유난히 밝은 사람이 있고, 유난히 어두운 사람이 있다.

유독 긍정적인 사람이 있고, 유독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

매일 쌓아 가는 삶에 따라 그 삶이 바뀐다.

매일 칠해 가는 생각의 색깔에 따라 삶의  그림은 변해간다.


어두운 색을 많이 칠하면 그림이 어두워 진다.

밝은 색을 많이 칠하면 그림은 밝아진다.

어두운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 만사가 어둡게 보인다.

밝은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 만사가 밝게 보인다.


보통사람 보다 낙천적인 사람이 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진취적이고 ,적극적이고, 밝은 사람이 있다.

좋은 일에는 좋아하고,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잘 되리라  기대하며 최선을 다한다.


보통사람 보다 비관적인 사람이 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수동적이고, 어두운 사람이 있다.

좋은 일에는 시큰둥 하고, 사소한 일에도 걱정하고,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의기소침하여 어둠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삶은 선택하는 것이다. 삶은 정의하기 나름이다.

나의 삶이 어떠 한지 선택하면 된다. 

나의 삶이 어떠한지 정의 하면 된다. 

물론 쉽지가 않다.


대게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살고 싶어 하지만  인생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화나게 하고, 서운하게 하고, 낙담하게 만든다.

나는 잘 하고 싶은데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하고, 걱정하게 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매일 그렇게 살아야 그런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매일 책을 보는 사람은 유식한 사람이 되고, 매일 사색하면 현명한 사람이 된다.

매일 운동하면 건강한 사람이 되고, 매일 글을 쓰면 작가가  된다.

매일 술을 마시면 알콜 중독에 빠찌고, 매일 우울한 생각을 하면 우울증에 걸린다.

매사에 밝은 면을 보려해야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매사를 좋게 생각하려 해야 낙천적인 사람이 된다.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가!

오늘 하루 무엇을 생각했는가!

오늘 살았던 삶!

그게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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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0:34

일제가 패망한 뒤 일본군 고위 장성들은 대부분 전범으로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무능함으로 일본군에 큰 피해를 줬다 하여 석방된 사령관도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동남아지역 일본군을 통솔한 "무다구치 렌야" 중장! 그는 세계 전쟁사 최악의 작전 중 하나로 불리는 "임팔작전(Battle of Imphal)"을 지휘한 사령관이기도 하다. 임팔 지역은 동남아에서 중국, 인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군사 요충지다. 일본군이 이곳을 점령하면 연합군의 보급로를 차단 할 수 있어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임팔 지역은 영국군의 영향권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숲이 빽빽이 들어 찬 정글이라 군사작전을 펼칠 수 없는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렌야 중장은 임팔 공격을 명령했다. 참모들이 일본 본토와 너무 멀어 보급 차질 문제를 제기하자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빼앗는 것이라 주장했다. 밀림이라 차가 있어도 포탄과 무기를 실어 나를 방법이 없다고 하자 소나 말에 장비를 싣고 가면 되고 포탄을 다 쓰면 소나 말을 식량으로 활용하면 된다는 황당한 논리를 폈다. 뿐만 아니라 사령부 옆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이기게 해달라며 매일 빌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투 결과는 참담했다. 전투다운 전투 없이 32,000명은 포격에 죽고 4만여 명은 보급이 끊겨 굶어 죽었다. 이길 수 있다는 긍정적 신념이 아무리 강해도 그 방법이 비합리적이면 실패하게 된다. 


무능한 장군이 있다면 유능한 장군도 있다. 렌야 중장의 "임팔전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전투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이다. 12척의 배로 133척을 물리친 명랑해전! 정말 기적과도 같은 승리다. 10배가 넘는 적선을 침몰 시키고 수 천명의 적군을 수장 시키면서도 단 한 척의 배도 잃지 않았고 피해는 고작 전사자 2명과 부상자 2명뿐이었다. 그렇다고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순신의 지략과 용맹함만으로 이겼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이순신은 그 누구보다 합리적이며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이었다.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전투에 무모하게 뛰어드는 스타일이 아니다.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패하여 조선수군이 괴멸 됐을 때 조선군 총사령관 권율은 이순신에게 살아 남은 군인이라도 모아 육군에 합류하라 명령했다. 상관의 명령임에도 이순신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지상 전투에서는 조선군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길 수 있다는 긍정 뒤에는 합리적 근거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임하는 것은 용맹이 아니라 무모한 긍정이다. "12척으로도 133척을 이길 수 있다"는 이순신의 긍정 속에는 합리적이며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당시 일본 해군의 주력은 약탈을 일삼던 해적 스타일의 배라 함포가 아예 없거나 앞쪽에 1~2개가 고작이었다. 반면 조선의 판옥선은 24개 이상의 함포가 있었으며 배의 바닥이 평평하여 그 자리에 회전할 수 있었다. 이런 특징을 잘 살리면 일제 사격, 연속 사격이 가능해진다. 이순신은 고심 끝에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판옥선의 장점을 활용하고 적을 유인하여 좁은 해협에서 싸우면 압도적 화력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 했던 것이다. 이순신이 12척으로 133척을 상대 한 것은 불가능 한 줄 알면서도 사나이 객기를 부린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상황에서 출발했지만 고심 끝에 가능한 방법을 찾아 냈기 때문이다. 


흔히 긍정적 사고를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된다고 믿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큰 착각이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긍정하는 데는 반드시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다. "내가 생각해도 안 될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긍정이라기보다 자기기만이다. 영화 "마션"을 보면 화성에서 조난 당했다 살아온 주인공이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우주에서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언제나 상황이 틀어지지만,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자신의 과학지식을 총동원해 문제를 해결했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또 다시 해결하고, 그러다 보니 지구에 귀환 할 수 있었다. 


 그렇다. 진정한 긍정주의는 무작정 잘 될 거라 믿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다. 백의종군에서 돌아온 이순신이 처음 했던 일은 도망친 배를 끌어 모으고, 흩어진 패잔병을 불러드리는 일이었다. 이순신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억울한 모함을 받고 자신이 키워온 수군이 전멸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가능성을 찾고 해결책을 모색했던 것이다. "반드시 이긴다"는 목표를 정해 놓고, "어떻게 하면 될까"하는 합리적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그를 위대한 장군으로 만들었다. 

 목표의 방향은 긍정적이되 성취를 위한 방법론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내가 생각해도 안 될 것 같고 말도 안 된다 생각하면 성취 가능성은 낮아진다.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 한다. 긍정적 목표를 세웠으면 어떻게 그 목표가 실현 되는지  스스로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긍정적인 마음만 있고 "어떻게" 라는 방법론이 없으면 그것은 목표가 아니라 희망사항이 된다.  낮은 목표는 동기부여가 약해 성취 에너지가 약하고, 지나치게 기대치가 높은 비합리적인 목표는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해 이 또한 성취 에너지가 약하다. 성취에너지가 가장 높은 것은 합리적으로 긍정하는 것이다. 매사에 할 수 있다 생각하라, 가능하다 믿어라. 다만 어떻게 가능한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고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성취 에너지의 원천은 합리적으로 긍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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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0:33

"죽은 시인의 사회"와 함께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중 하나는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사실 영화 내용은 제목처럼 그리 로멘틱하지 않다. 아니 전혀 아름다울 수 없는 삶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의 배경은 유대인 박해가 극에 달했던 2차 세계대전!

주인공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내와 이별 해야 했고,  어린 아들과 강제 수용소로 끌여가야 했다. 

행복하고 단란했던 가정이 일순간에 풍비박산 났다. 


대개 이런 상황이면 절망에 빠지기 마련이다.

죽을 날을 기다리며 공포에 떨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슬퍼하고, 어린 아들이 불쌍해 견딜 수 없어 할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슬퍼하지도, 걱정하지도, 한탄하지도 않는다. 

암울한 환경속에서도  암울해 하지 않았다.

수용소에 끌려가면서 아들에게 "우리는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다"고 말한다.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유쾌함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고통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리라. 

독일군의 추적을 피하는 것을 숨바꼭질이라 하고, 아내를 찾다 붙잡혀 끌려 가면서도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 보여 아들이 게임을 하고 중이라 믿게 끔 만들었다. 

수용소 생활이 배고프고 고되지만 소년의 눈에는 줄곳 놀이로 보였다. 

마침내 독일이 패망하고 전쟁이 끝났다.게임을 하다보면 탱크도 탈 수 있다는 아빠의 말이  현실에서 이뤄졌다.   

소년은 미군이 몰고 온 탱크를 얻어 타고 엄마도 만났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던가. 세상만사 마음 먹기에 달렸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어떤 색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듯,  어떤 관점으로 생각 하느냐에 따라 삶은 다르게 보인다.

똑 같은 일을 겪고도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누군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내가 반가운가!"

"나를 좋아 하나?"

"나를 보면 즐겁나"

"내가 편한가?"

"내가 가볍게 보이나?"

"내가 웃겨 보이나?"

"나를 비웃나?"

"무슨 꿍꿍이가 있어 웃지?"

"언제  봤다고 웃지?"

"내가 그렇게 쉬운 사람인가?"

 .......................

이 작은 사건에서도 수 많은 생각이 파생 될 수 있다.

대게 생각은 내면의 나를 투영한다. 

설사 상대가 나를 비웃는 마음에 웃었다 할지라도 반가운 마음에 웃는다고 생각하며 그를 친절히 대하면 어느덧 따뜻한 분위기는 동화된다.

상대가 나를 반가운 마음에 웃었을지라도  나를 비웃는다고 생각하여 쌀쌀맞게 대하면 어느덧 차가운 분위기가 맴돌게 된다.

생각이란 이런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 생각이다.

"생각하기" 란 결국 수 많은 갈래 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많이 걸으면 그 곳에 길이 생기고, 길이 한 번 생기면 습관처럼 그 길로 걷게  된다.

많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그곳에 생각의 길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각을 잘 해야 한다.


정원을 가꾸듯 생각도 잘 가꿔야 한다.  정원을 관리하지 않고 놔두면  그곳에 온갓 잡초들이 자라난다.

생각이 떠오르는대로 지켜보고, 생각이 날아오는대로 방치하면 그곳에 부정적이고 잡초같은 생각들이  자리를 잡고 뿌리를내려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심어야 할 생각이 있고, 뽑아내야 할 생각이 있다. 가꿔야 할 생각이 있고  쳐 내야 해야 할 생각도 따로 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저절로 아름다운 정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게 잡목이 무성한 어두운 마당이 된다.

우울하게 만드는 생각은 뽑고 ,  유쾌하게 만드는 생각은 심어야 한다.

힘 빠지게 만드는 생각은 가지치기 하고, 힘나게 하는 생각은 잘 가꾸는 것이다.

생각이란 자꾸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고 자라게 된다.


나를 슬프게 만들고 , 어둡게 만들고, 화나게 만들고, 억울하게 만들고, 서운하게 만드는 생각은 뽑아내고 잘라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자리잡고 뿌리를 내리면  나는 행복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내가  행복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나는 계속 어둠속에 머물며 슬픈 사람이 된다. 

수상록이 있다면, 일기를 쓴다면 내가 하는 모든 생각들을 적어보자.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

과거에 일어 났고,  현재 일어나고 있으며, 미래에도 그럴 것 같은 슬프고, 화나고, 분하고, 억울한 것들을 모두 적어보자


그렇게 적은 생각들은 나를 행복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생각들이다.. 

그 생각들은 내 마음의 정원에  아무렇게나 자리 잡은  잡초같은 생각들이다..

그런류이 생각들이면  자꾸 자라게  물을 주지 말고, 가꾸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그런 생각들은 스스로 말라 죽는다..


이제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기대 되게 만들고, 설레게 만들고, 힘을 주게 하는 것들을 적어보자.

무엇을 해볼까..  어디를 다녀볼까, 무엇을 배워볼까, 어떤 도전을 해볼까..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분명 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생각들이 분명히 있다.

이제 그 생각을 심고 그 생각을 많이 하여 물을 주고 관리를 해보자.


자주 걷는 곳에 길이 생기고, 자주 가지 않으면 그 길은 사라진다.

하루중에 슬픈 생각이 많이  든다면 생각의 길이 그 곳에 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의 길이 어두운 곳으로 연결 된다면  길을 바꿔야한다. 

밝은 쪽으로,  따뜻한 방향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채워야 행복한 사람이되는 걸까?

하는 일마다 술술 풀려야 행복해 지는 걸까?

그렇지 않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모든 걸 채우려 하지  않는다..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리지 않아도 불행해 하지 않는다.

세상살이 오십 보 백보다.  

살다보면 일이 잘 되기도 하고 꼬이기도 한다.

행운이 찾아 오기도 하고, 행운이 도망가기도 한다.

슬픈 것은 슬픈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고, 유쾌할 때는  유쾌한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가을이다. 

걸을 수 있어 좋고  높은 하늘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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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0:32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젊은 날 적지 않은 방황을 했다.

뜻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늘 불만이였고 원망스러웠다. 그 대상은 운명이였다.

가난을 물려주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시골에 홀로 계시는 홀어머니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땅히 하소연 할 때가 없었던지라 답답하기까지 했다.

늘 침울한 감정이 나를 지배했다.  

그래서일까..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한 때 이랬노라고 말하면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극적으로  삶이 바뀐것도 아니며  특별한 계기도 없다.

이를 악물고 노력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 나타나 방황하던 나를 이끌어준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날부터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먹구름이 겉힌 것 같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행복이  뭔지 알아야 한다.

행복..  happiness    

행복은 기쁜 감정이고, 만족감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할 때 기쁜지 알아야 한다. 

그걸 왜 몰라 당연히 다 아는 것 아니야? 

당연히 다 알 것 같지만 의외로 다들 자신이 언제 행복한 지 모르고 산다.   

다행히 지금은 비교적 잘 안다.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음악 목록이 있고,  

걸으면 상쾌한 산책 코스도 계절별로 정해 뒀고,  

읽기만 하면  모든 근심 걱정을 작아지게 만드는 여러권의 책이 있고

돈 벌이와 상관은 없지만 순수 호기심으로 탐구하는 분야도 여럿 있다.

하루가 행복한 사람은 나를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일 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보다  많이 하는 사람이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 하루가 행복해진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된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지 알면 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을 만들고 그 시간에 그것을 하면 된다.


행복의 또 다른 축은 만족하는 것이다. 

텅빈충만 이라는 말이 있듯  욕망을 비울수록 채워지는 게 행복이다.

물론 욕심 낼 때는 욕심을 내야 한다..  

열정이 필요하고, 자기 향상심으로 스스로 동기부여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를 성장시켜 주는 건전한 불만족이 있는가 하면 나를 파괴하는  불만족도 있다.


나로 하여금 동기부여를 주는 불만족은  열정이다. 

열정은 희망을 지향하면서  나를 성장 시킨다.

나로 하여금 우울한 감정만  유발하는 불만족은  욕심이다.

욕심은 절망으로 유도하기에  나를 파괴한다. 

욕심을 이기는 방법은   그나마 " 다행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열정은 취하고 욕심은 버려라.. . 

열정을 일으키는 욕망은 만족하지 말고 키워라.  그것은 꿈이  된다.

욕심을 유발하는 욕망은 그대로 두고 만족하라. 그러면 행복해 진다.


행복의 시작은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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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0:31

"불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교도 탄압, 종교재판, 종교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유일한 종교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말이다.

어느 종교든 기본 가르침은 선을 행하라 이며 , 패륜 종교가 아니라면 악을 부추기지 않는다.

하지만 유일신 사상과  죽음 뒤 심판이 있다는 종교는 태생적으로 분쟁의 씨앗을 잉태 하고 있다.

물론 교리의 결함이라기보다 인간의 불완전함 때문이다.

내가 믿는 신만 진정한 신이고 너가 믿는 신은 우상 숭배이며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하면 분쟁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또한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는 교리는 종교 사기꾼들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많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 지고 있는 IS 만행..

폭탄을 두른 채 인샬라(신이 원하신다면..)를 외치며 불속으로 뛰어 드는 어린 소년..

산 자를 불로 태우고, 커터 칼로 목을 자르는 무자비한 청년.. 

그런  짓을 하고도 자기가 믿는 신에게 감사 기도하는 모습.. 

그 무자비한 행동의 원동력은 자신은 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신념에 기인하며  그렇게 순진한 애들을 부추기는 놈들이 있기 때문이다.


청동기 시대 중동지역 어느 족장이였던 아브라함에 의해 파생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타이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아브라함을 만날 수 있다면 당신의 후손들이 21세기에 이렇게 살고 있는 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꼭 묻고 싶다..

그에 반해 불교는 유일신 개념이 없다.

창조주도 없고, 최후의 심판도 없다. 사후 세계의 개념도 부처의 가르침이 아니라 부처가 속한 사회의 세계관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철학에 가깝다. 

그것도 아주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수준 높은 철학...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philosophy) =   philos 애호 + sophia 지혜  

철학은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는 탐구학이자 지혜학이라 할 수 있다. 

삼라만상의 이치를 탐구하다 보니 철학에서 논리학이 나왔고 수학도 나왔으며 과학도 나왔다.

철학자 중에 수학자, 과학자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철학자? 별거 아니다.. 그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철학자다.

모르는 게 있을 때 의문이 생기고 탐구하면 그 사람은 철학자다. 

요즘 지진이 많이 일어 난다.. 아이티에서,  일본에서 , 중국에서  그리고 네팔에서..

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TV를 켜면 흙 먼지를 뒤집어 쓰고 죽은 아들을 부여 안고 통곡하는 여인이 나온다.


그 모습을 보면 여러가지가 궁금하지 않는가?  수 많은 의문이 생기고 알고 싶지 않는가?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하며 그 신은 절대 선하다면 왜 저런 비극이 일어 났을까..

만약 이 세상을 만든 신이 존재 한다면 그 신은 인간사에 개입할까 하지 않을까..

인간사에 개입한다면 왜 지진을 막지 않았을까.. 막을 수 있음에도 방치 했다면 신은 절대 선한 존재가 아닌가?

또한 지진은 왜 발생하며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 한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나...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온다.. 책도 얼마나 많은가..  도서관에 가면 웬만한 책을 다 빌려 볼 수 있다.

답을 찾다 보면 지구 내부 구조를 알게 되고, 액체 상태의 맨틀이 대류 운동을 하면서 조각난 지표의 지각을 움직이면서 

서로 다른 지각 판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지진이 많이 발생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진이 나는 이유는 신이 진노해서 아니라, 지각판이 분리 되어 있고 그 지각이 움직이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 일본에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가 일본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숭배 했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주장에 속지 않을 수 있다.


요즘은 철학 하기에 정말 좋은 세상이다.

옛날 고승이 10년동안 벽을 보며 묵언수행 해야 겨우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을 요즘 사람들은 직장 다니며 놀러 다니고 할 거 다 하면서도 깨달을 수 있다.

세상 만물의 이치를 설명해 주는 도구가 너무도 많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도통 뭔 소린지 모를 이 말도 소립자 물리학의 표준모형, 진공에너지, 양자파동.. 이런 걸 대충만 알면 이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별에서 원소가 만들어지는 원리, 분자의 구조를 개념적으로만 알아도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가 물질적으로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임을 알게 된다.

삼라만상 이 우주가 무엇으로,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깨우치게 되면 세상은 정말 달리 보인다.


길을 가다 들풀을 보고도 전율하게 되고, 옷깃만 스친 인연도 감격으로 다가온다.

자연의 이치를 깨우치려는 철학이 과학으로 발전 했다면 , 불교는 마음의 평화를 찾는 방법을 탐구하려는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현각스님은 "불교는 마음의 평화를 찾는 테크놀리지"라 했는데 참으로 멋진 표현이다.

한 때 사는 게 고통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때 불교철학을 접하고 내 마음을 가지고 이런 저런 실험을 많이 해보았다. 


불교 테크놀러지대가 말하는 것 처럼 내가 겪고 있던 많은 고통들.. 

그건 육체의 고통이 아니였다..

사는 게 힘들다고 느낄 때도 밥 세끼 꼬박 꼬박 잘 챙겨 먹었고, 특별히 아픈곳도 없었고 사지 멀쩡했다..  

내가 받는 고통은 마음의 고통이였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련... 현재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걱정.. 남들과 비교 하는 열등감,  본전생각.. 억울하다는 생각.. 


그 모든 것은 욕심에 기인했다..  욕심이 쌓이면 집착이 되고, 집착은 나를 더욱 고통속으로 몰아 넣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생각이라는 실체가 없는 망상임을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구름을 보고도 인상 쓰고, 이쁜 꽃을 보고도 걱정하고 있는 내가  비로소 보였다. 

뭔가 크게 속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생각에 내가 속고 있었던 것이다.

부처상 앞에 머리 조아리고 절하는 불교인은 아니지만 불교 사상은 참으로 유용한 철학적 도구라 생각한다.


우주의 구조를 깨우치는 데 과학만한 도구가 없고,

마음의 구조를 깨우치는 데 불교철학은 정말 매력적이다.

철학하는 삶을 살아보자. 

밥먹고 사는 데 당장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호기심을 가져보고 호기심이 생기면 탐구해보자.

지혜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품을 수 있는 세상의 영역도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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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생2017. 2. 5. 10:30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태양 에너지를 먹고 살아간다.
식물은 빛 알갱이를 이용해 광합성을 하여 포도당을 만들어 에너지로 쓰며 살아가고,
동물은 식물의 포도당을 이용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만들어 에너지로 쓰며 살아간다.
식물과 동물을 먹는  인간도 결국 태양이 보내주는 빛 알갱이를 먹고 살아 가는 것이다.
주기만 하는 태양은 지구에 생명이 살아가는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고마운 존재다.
고대 종교중에 태양신이 많았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듯 하다.

그렇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존재하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하다. 

짐승은 육체를 지탱할 에너지만 있으면 살아 갈 수 있지만 인간은 마음을 지탱할 에너지도 필요하다.
쇼펜하우어 말마따나 삶이 고달프면 고뇌에 빠지고, 삶이 편하면 권태에 빠지는 게 인간이다.
배부르게 먹어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공허함에 못이겨 괴로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지인중에 대학 병원에 근무하는 이가 있다.
다리를 다쳐 입원 했는데 옆 방에 영화배우 안성기씨 부인이 입원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병명은 우울증이란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난리다.
잘 생기고 자상한 남편이 있고, 가진 것도 많아 부유하고 ,  아이들마져 잘 키워서 남부러울것 없을 것 같은데 
왜 우울한 감정이 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에게 말 못할 사연이 있겠지만 마음의 에너지가 방전 되면 무기력해 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슬픈 생각 , 서운한 감정 , 억울한 마음, 답답한 느낌... 이런 감정에 휩싸이면 이유도 없이 다운된다..
에너지를 빼앗기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 한번씩 이런류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럴때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 받거나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어  공허함을 채워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동료로 부터..가족으로부터..  친구로 부터.. 
사랑을 받거나, 관심을 받거나, 위로를 받거나 , 공감을 얻거나... 
그렇게 외부로부터 , 그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감싸주고, 이해해주면 에너지를 공급 받게 된다..
그러나 그게 여의치 않을때도 있다. 
그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위로도 안 되고, 공감도 안 되고, 마음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야 한다.

스스로 타오르는 용광로, 내 속에서 샘솟는 샘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창의 하는 삶.  
탐구 하는 삶.   
가치 있는 것을 추구 하는 삶. 
모두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미쳐 모르던 것을 깨우쳤을 때 에너지가 샘 솟는다.
의미 있는 일을 했을 때 기쁨이 솟아 난다.
내가 무엇가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없던 힘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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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이사르21
칼럼/인생2017. 2. 5. 10:29

언제부턴가 "합리적"이라는 말이 좋아졌다.

그 말을 좋아해서일까~  그렇게 되길 원해서 일까.. 

나에게 있어 그 어떤 말보다 듣기 좋은 말은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남이가" 라는 말도 있듯 "정(情)"문화가 유별난 우리나라에서 "합리적"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는 다소 사무적이고 차갑다.

하지만 "합리적"이라는 말 만큼 "인간적"인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인 것은 "계산적"인 것과 다르다.

"계산적"이라는 말이 이익을 따지는 것이라면,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치를 따지는 것이다.

"이치"란 무언인가!  "이치"는 마땅히 그러함이다.

마땅히 그러함은 스스로 그러함이고 , 스스로 그러함은 곧 자연(自然)이다.

합리적인 주장이 설득력 있는 이유도 논리가 이치의 결을 따르기에 그 말이 자연스운 것이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훈련 되어 있으면  자연스러운걸 추구하기에 본질에 접근하기 쉽다.


"로또 당첨 명당"이라는 말이 뉴스에 종종 나오는데 그 말을 듣고 "그 집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곤란하다.

이런류의 말은 1초만에  답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로또명당이 나오는 이유는 마케팅을 잘 해서이다..

1등이 나왔을 때 현수막 걸고  요란을 떨면 소문듣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로또 사는 사람이 많을수록 1등 당첨 확률이 높아 진다. 

높은 확률로 인해  또다시 1등이 나오면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와서 확률이 점점 높아진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1등이 3번쯤 되면 "로또 명당 타이틀"을 획들 할 수 있어 주인은 돈방석에 앉게 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어느 도시에 언제부턴가 "목사와 알콜중독자"가 많아졌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목사가 많아 졌는데 왜 알콜중독자가 왜 늘어났지?

알콜중독자를 치유하기 위해서 목사가 더 많이 필요했나?? 

뭔가  신비하고 오묘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면 인문학적 상상력이 너무 많은 것이다..

"합리적 사고"가  훈련된 사람이면 10초 내에 답을 알 수 있다. 정답은? 

알콜중독자와 목사의 연관성은 없다.

그냥 그 도시에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에 목사와 알콜중독자의 수가 늘어난 것이다.



주식투자로 100억을 벌었다는 주식부자가 온라인카페를 만들어 놓고 종목 찍어 주고 회원들에게 회비를 받아 먹고 있다면?

이것도 아주 쉬운 문제다. 사기꾼임을 한 눈에 알아 봐야 한다.

돈을 벌고 싶다면? 

그 실력으로 그냥 주식투자나 계속하면 된다. 

개인투자자를 위해 좋은 일 하고 싶었다면? 

 돈 안 받고 종목을 찍어주거나 블러그  하나 만들어 놓고 시장 상황에 훈수를 두면 된다.

100억 있다는 양반이  회비 푼돈 받아 먹으려 하는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런데 이런류의 말에 현혹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놀랍게도 21세기를 사는 사람이 영생한다는 말도 믿더라.

이 모든 게 이치를 따지는 훈련이 부족하고  논리적 사고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수학시험 볼 때 계산기를 허용해야 하는냐 마느냐로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갑론을박  말이 많은데  계산기를 허용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수학 공부를 하는 이유는 연산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복잡한 연산은 컴퓨터를 시키면 잘 한다.

수학공부를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생활 할 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미분 적분을 배우고, 행렬과 삼각함수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식을 유도하는 가운데 ,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하기 때문이다.  


이치를 따지는 합리적인 생각 

이치를 논하는 논리적인 생각

너무도 중요한 삶의 요소이다.


합리와 논리로 이치를 추구하라..

이치를 추구하는 자, 통찰을 얻게 된다.

통찰(洞察)을 얻게 되면 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이치를 알게 되면 안이 훤히 내다 보이는 간파(看破)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어느순간  안개가 걷히면서 안 보이던 게 그냥 보이는 때가 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모든 면에서 그렇다는 게 아니다.

평범한 서생이 그럴리 없지 않는가.  

하지만 그러함을 추구(追求)하기에, 정성을 쏟은 분야는 근처에 이른 것도 없지 않다.  

누구든  정성을 쏟으면 어둡고 혼돈한 것들이  어느덧  맑아지고 훤히 들여다 보이는 때가 있다.  

그러면 그 분야에 혜안(慧眼)을 얻게 된다.  

그 시작은 합리적이며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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